뒷담화의 치명적 유혹
본당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공동체 안에서 뒷담화를 하며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자끼리 이래도 되나?’ 하면서도, 그런 자리를 통해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어 당혹스럽다고 합니다.
‘뒷담화의 유혹만 다스릴 수 있어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뒷담화가 나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뒷담화가 ‘나쁘기만’ 할까요? 최근 심리학에서는 뒷담화가 지닌 진화심리학적 차원의 긍정적인 기능들이 제기되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첫째, 뒷담화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숨겨진 정보들을 습득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에 나에게 도움을 줄 사람과 해를 끼칠 사람을 구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은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결속력과 유대감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차마 당사자 앞에서는 할 수 없었던 해묵은 감정을 자유롭게 쏟아냄으로써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감정적으로 낮추어 평가하고 판단하는 상대방의 어떤 특성이, 바로 본인이 지닌 특성일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projection)라고 합니다. 이는 자아(ego)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의 원인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인정받고 칭찬받던 모습은 곧잘 드러내지만, 부정적 평가를 받았거나 상처의 원인이 되었던 모습은 자꾸만 감추어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의 어둠, 곧 ‘그림자’가 되어 나의 모습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됩니다. 이 그림자는 덜 아문 상처처럼 건드릴 때마다 심리적 불편감을 주는데, 내가 감추어 둔 바로 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보게 될 때 가장 강렬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묻어둔 나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뒷담화의 치명적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3-5)."
글 | 배기선 영덕막달레나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