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노년을 위한 ‘시’
한국에도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대중매체는 노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 작품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경제활동의 중심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시되던 노인들의 생생하고 입체적인 증언이 노배우들의 연륜과 만나 깊은 감동을 줍니다.
노년에 대한 통찰은 성경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나이 많은 남녀들은 절제와 기품을 갖추고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티토 2,2-3 참조). ‘지역사회가 부여한 권위를 악용하는 노인들은 자신의 꾀에 걸려 자멸할 뿐입니다’(다니 13,1-64 참조).
영화 ‘시’는 알츠하이머 질환으로 언어를 잃어가는 노인이 고도의 언어활동이자 성찰의 산물인 ‘시 쓰기’를 통해 공동체가 은폐하려던 진실을 증언하는 이야기입니다.
남한강변 소도시의 ‘멋쟁이 할머니’ 미자는 평생의 소망이었던 시 쓰기를 위해 문화강좌에 등록합니다. 시인의 가르침에 자극받아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연습에 한창이던 어느 날, 그녀는 유일한 식구인 외손자가 같은 학교의 소녀를 죽음으로 내몬 성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소년들은 본인들의 안위만 걱정하고, 중년의 아버지들은 제 자식들만 걱정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애씁니다.
예쁘게 살고 싶었던 미자는 이 사건에 회피 반응을 보입니다. 꽃을 과장되게 예찬하며 수첩에 시상을 적거나, 손자 친구 아버지들의 종용에 못이겨 부정한 방법으로 합의금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전과 다른 감수성으로 보게 된 그녀는 결국 딸을 잃은 어머니의 넋 잃은 모습을,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들을, 사진에 담긴 소녀의 짧은 삶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결국 미자는 손자를 경찰에 고발하고, 소녀가 남기지 못했을 유언을 시로 남긴 채 사라집니다. 영화는 소녀가, 나중에는 미자가 소녀를 따라 고뇌하며 오가던 마을 풍경과 동선을 빈 공간으로 따라가면서 관객이 그녀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남루한 동네에 살면서 옷맵시에 신경을 쓰고 시 쓰기에 도전하는 생활보호대상자 할머니는 비웃음의 대상이었습니다. 미자는 경시되는 자신의 존엄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단아한 겉모습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지키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와 노년의 존엄은 다른 방식으로 완성됩니다. 아름다운 세상 속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추악함을 직시하며 행동함으로써.
글 | 김은영 크리스티나(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