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순교자여. 새 빛 되소서.”
“순교로 빛을 밝힌 103위 성인. 오롯이 바친 넋에 새순이 돋아. 순례의 교회 안에 큰 나무되니, 님 따른 그 생애가 거룩하여라. 영원히 받으소서. 희망의 찬미찬송을. 이름 모를 순교자여, 새 빛 되소서.”
(가톨릭 성가 285번 <103위 순교 성인> 1절)
이 성가의 가사 중에 다시 한번 눈여겨 봐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름 모를 순교자여, 새 빛 되소서.”라는 1절의 마지막 가사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인 오늘, 우리는 마땅히 103위 순교성인들을 기리며 기념해야 하겠지만, 이들과 더불어 아직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성인으로 불리지 못하는 분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순교자들 역시 잊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비록 피 흘려 목숨을 바치지는 않았지만, 신앙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평생 박해를 피해 타향을 전전하며 갖은 고생을 다 하다 일생을 마친 분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역시 자신의 삶을 다 바쳐 신앙을 위해 헌신하신, 넓은 의미로서의 순교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순교자로서의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거나 그 한순간의 결단 때문만이 결코 아닙니다. 백 년 가까이 되는 긴 세월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굳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또 최후의 순간에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굳은 믿음과 그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복음적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라고 살고 싶은 욕망이나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결국 하느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1독서 지혜서의 말씀처럼,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지혜 3,5)이며,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지혜 3,7)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이러한 굳건한 믿음과 그에 따른 삶이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어떤 역경과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사랑을 지킬 수 있게 한 순교의 바탕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은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들은 무엇이 정말 소중한 것인지, 무엇이 정말 값진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오늘 기념하는 103위 순교성인들과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전수한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이어받아 이 시대의 빛이 되는 자랑스러운 ‘순교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글 | 전현수 마티아 신부(교구 성소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