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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신 사람의 아들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4-11-21 13:41:50 조회수 : 76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저의 ‘놀이터’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집에서 놀다가 심심해지면 아버지께 ‘비행기를 태워달라.’고 하기 일쑤였고, 제 눈에 ‘큰 산’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비행기 놀이’를 해주시면 날아갈 듯 행복했습니다. 이렇듯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저에게 ‘큰 산’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제가 신학생이 되었던 때, 어느 주말 오후였습니다. 어깨를 주물러달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더는 아버지가 ‘큰 산’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돌덩이처럼 딱딱히 굳은 어깨의 감촉만이 느껴졌죠.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면서 “한의원에 가서 침 맞으시면, 훨씬 부드러워진대요.”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께서는 소탈하게 웃으시면서, “아빠가 한의원에 갈 시간이 어딨어. 아들이 이렇게 종종 주물러 줘.”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여느 아들들이 그렇듯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굳은 어깨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무게’이자 ‘희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날,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돌처럼 굳은 아버지의 어깨에 놓인 ‘무게’와 ‘희생’ 덕분에 그동안 가족들이 건강히 지낼 수 있었음을 두 손과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이 대축일을 지내다보면, ‘예수님’과 ‘왕’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오늘 제1독서만이 아니라, 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지칭할 때도 사용하시는 표현인데, ‘스스로 박해를 감당하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속한 나라의 임금님은 우리를 옭아매고 옥죄는 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박해를 견뎌내고 섬기는 왕’이심을 알려주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백성’을 ‘땅’에 ‘임금’을 ‘하늘’에 빗대기도 하는데,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님에 따르면, 독일어에서 ‘하늘’이란 말은 온몸을 감싸는 ‘셔츠’라는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하늘과 같은 임금이신 예수님’은 백성인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분’이심도 함께 떠올릴 수 있겠죠.

선배 신부님을 통해 알게 된, 한 단상을 나누며 이날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어떤 의미에서)하느님은 ‘빛의 하느님’이 아닌

‘어둠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눈은 어둡기에,

누가 잘났든 못났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 다 똑같은

사랑스러운 자녀로 대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