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례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하나요?
몇 해 전부터 장례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경험하는 어색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의 인사’입니다. 고인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유가족은 전혀 평화롭지 않은데, 그 앞에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문득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교적인 정서를 가진 한국 교회에서는 한 때 ‘평화의 인사’를 생략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장례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다시 할까요?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요한 14,27 참조)
주님의 기도와 부속 기도 후, 사제는 모든 미사에서 요한 복음 14장 27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평화의 예식’을 거행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전쟁이나 가난이 없을 때 얻게 되는 세상의 평화가 아닙니다. 만일 그러한 평화라면, 장례미사 때 하는 ‘평화의 인사’는 유가족에게 위로가 아니라 더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 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죄의 용서와 밀접한 관련”1)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혼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배신행위와 비겁함을 용서해 주시면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용서를 통해 그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 중에 행하는 ‘평화의 인사’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입니다.
또한 그 평화를 위해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고 기도를 바칩니다. 즉,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 서로 용서하겠다는 각오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2)이며, 용서와 화해를 통해 주님의 몸을 모시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기쁘게 나누는 것이고, 장례미사에서도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평화’의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하여 용서와 위로 그리고 회개와 화해의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다면, 장례미사 때 평화의 인사도 결코 어색한 인사가 아니라 고인과 유가족을 위한 진정한 위로의 인사가 될 것입니다.
글 |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1) 손희송, 『마음의 문을 열다』, 생활성서, 2018, 166.
2) 같은 책,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