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은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카롤 보이티와’입니다. 아버지는 육군 장교로 근무했으며,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보이티와는 소년 시절에 어머니와 형이 세상을 떠나자, 독실한 신앙인인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했습니다. 보이티와는 대학에 진학해 문학을 전공하면서 시와 희곡을 썼습니다. 대학 시절에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고, 나치는 대학을 폐쇄했습니다. 보이티와는 화학 공장 노동자로 그리고 채석장 인부로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나치에 대한 저항으로 지하 연극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보이티와는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마친 후 로마로 유학을 가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보이티와 신부는 30대에 주교, 40대에 추기경 그리고 50대에 교황이 되었습니다. 456년 만에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이 교황이 되었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취임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추기경들이 차례로 교황에게 인사드렸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인사를 드리자, 교황은 “나는 한국을, 특히 북한을 늘 마음에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한국을 꼭 방문해달라고 간청했고, 교황은 그 간청을 들어주었습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을 맞이한 해였습니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하자 교황은 무릎을 꿇고는 순교자의 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로 “벗이 있어 먼 데로 찾아가니 그야말로 큰 기쁨이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벗이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교황은 폴란드와 한국은 역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한국에 대해 애틋한 연민의 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 순교 복자 103위 시성식이 열린 여의도 광장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신자가 모였습니다. 교황은 1989년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했을 때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이토록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 일반 알현 도중에 극우파 회교도가 교황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교황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6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나흘 만에 의식을 회복한 교황이 말했습니다. “총을 쏜 형제를 위해 기도합니다. 나는 그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했습니다. 하느님 품 안에서 모두 같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그 말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교황은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았고, 2005년 결국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며칠 있으면 오래 그리던 여러분을 찾아
로마를 떠나 한국으로 먼 길을 나서게 됩니다.
내 마음은 이미 한국 땅에 가 있습니다”
(한국 방문 전 교황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