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습니다. 때로는 그 상처가 너무나 깊어 용서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로사(가명) 자매님 사건’이 그랬습니다. 로사 자매님의 남편이 상대 운전자의 커다란 과실로 교통사고를 당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로사 자매님은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어 매우 힘들어했고 우울감과 슬픔, 분노로 가득 찼으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무색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몇 개월 뒤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으로 형사재판에 넘겨졌는데, 자신의 범죄사실을 다 인정하면서 변호인을 통해 피해자 대리인인 제게 합의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과 분노가 로사 자매님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기에, 자매님에게 있어 용서는 불가능한 과제처럼 여겨졌습니다. 저 역시 자매님의 심정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약 한 달 정도 후 로사 자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운전자를 용서하고 합의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계기가 있었기에 용서가 가능해진 것인지를 여쭙자, 로사 자매님은 “변호사님도 아시겠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그 사람(운전자)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난주 미사 때 제 안의 분노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죄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고해성사를 하였죠. 고해소에서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용서하라고…. 하느님도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시는데 하느님이 그러신 것처럼 저도 이제는 그 사람을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로사 자매님이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와 치유의 은총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또, 자매님이 그 운전자를 용서했다고 해서 남편을 잃은 슬픔과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용기 내어 용서함으로써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분노와 원한의 감옥에서 해방된 것도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해소에서 신부님의 말씀처럼, 로사 자매님은 그 운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매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를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는 말씀이나,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35)라는 예수님 말씀이 솔직히 조금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원수가 예뻐서 용서하거나 사랑하라고 하신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수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그러면서 더더욱 우리의 영혼이 지옥 같은 삶을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요?
‘시간’보다 ‘용서가 약’이라는 진리를 몸소 보여준 로사 자매님과 자매님 사건을 통해 이를 깨닫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