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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성인, 콜베 신부 (축일 8월 14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4-08-09 11:16:08 조회수 : 224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5월에 한 신부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은 나치 독일이 폴란드에 세운 악명 높은 유대인 수용소였습니다. 신부는 수감자들과 함께 강제노동과 구타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루에 한 번 나오는 작은 빵마저 배고픈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고, 수감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1번 감방에서 한 사람이 탈출했습니다. 수용소에는 잔인한 규칙이 있었는데, 한 명이 탈출하면 같은 감방에 있던 열 명을 아사(餓死) 감방으로 보내 굶겨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수용소 소장은 열 명을 지명했습니다. 그때 지명된 폴란드 사람 한 명이 “살려주세요! 내겐 부모님과 처자식이 있습니다!”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죄수 번호 ‘16670’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나를 저 사람 대신 처형시켜 주시오! 나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러나 저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소.” 그가 바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1941) 신부였습니다. 


콜베 신부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성모님이 나타나 콜베의 머리 위에 흰색 왕관과 붉은색 왕관을 씌워주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 흰색은 순결, 붉은색은 순교를 뜻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콜베는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로마로 유학 가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폴란드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국민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콜베 신부는 수많은 유대인을 수도원에 숨겨준 것이 발각되어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아사 감방엔 죽음의 그림자가 차례로 드리워졌습니다. 사람들은 2주일 동안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먹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콜베 신부는 그들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모두 굶어 죽고 콜베 신부만 남았습니다. 소장은 콜베 신부를 빨리 죽이려고 의무실로 데려가 독극물 주사를 놓았습니다. 콜베 신부는 “주님, 저를 거두어 주시옵소서.”라는 짧은 기도를 드리고 하느님 곁으로 갔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콜베 신부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개최된 세계청소년대회에 참석했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콜베 신부가 수감됐던 11번 감방을 찾아가 깊은 침묵 속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의(仁義)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입니다. ‘인의’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콜베 신부는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바친 것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