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상 참 좁다.’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제 출신 본당에서 ‘부제 파견 실습’을 했던 분이 있습니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그분은 제 출신 본당에서도 ‘첫 미사’를 봉헌했고, 저는 그날 미사 중에 예비신학생이자 화동으로서 그분에게 ‘꽃다발’을 드렸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 저는 그 선배 신부님이 사목하는 본당으로 ‘부제 파견 실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실습 첫째 날, 신부님께 그날의 화동이 저였음을 말씀드렸고, 저희는 서로 반가워하며 40일간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선배 신부님은 저와 교우들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제 때 많은 ‘경험’을 쌓고, 때론 ‘실수’도 해봐야 해.” “저의 목표는 부제님이 우리 본당에서 ‘5kg’을 살찌우는 것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기쁨과 배움을 얻은 동시에 부족함과 어리숙함에도 직면했고, 그럴 때마다 신부님은 함께 기뻐하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목표 달성’을 위해, 간장게장, 대게, 한우, 흑돼지 등등 ‘많은 음식’을 사주셨습니다. 40일이 지나고, 비록 목표했던 ‘5kg 증량’에는 도달하진 못했지만, ‘바지 단추’를 채우기가 점점 더 버거워졌습니다. 그런 변화 속엔 선배 신부님의 사랑이 담겨있음을 느꼈고 감사함을 표현하자, 신부님은 매번 “많이 먹어, 또 먹어. 그래야 일 시키지.”라고 답했습니다. 그 40일간의 시간은 제 기억 속에 ‘일을 많이 했던 시간’이 아니라, ‘사랑을 많이 받았던 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라고, 정확하게는 “비스듬히 눕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날이면 왼쪽 팔을 베고 비스듬히 누운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평온함과 안락함을 느끼며 음식을 먹을 수 있었겠죠. 그렇게 먹고 나니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라고 하는데, ‘완전함, 충만함’을 뜻하는 ‘12’라는 숫자는 모두가 ‘배불리 먹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다고 표현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사람들이 보았다.”라고 전합니다. ‘표징’은 일종의 ‘신호’와 같은데, 예수님은 당시 삶의 고달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기적’이라는 ‘능력’을 뽐내신 게 아니라, 살아가는 힘을 다시 한번 얻을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셨다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 안에서 일희일비하는 후배에게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사주시며, “많이 먹어, 또 먹어. 그래야 일 시키지.”라고 사랑을 베푸셨던 선배 신부님의 모습을 통해, ‘표징을 일으키신’ 사랑 가득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