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 미사가 거행되거나 그렇지 않을 때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습니다. 항상 붉은 등이 켜진 금속 상자인데,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감실’(龕室)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감실’은 불교와 유교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부처님이나 신주(神主)를 모신 공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오면서 성체를 모시는 공간으로 ‘감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감실’의 본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감실을 뜻하는 라틴어 ‘Tabernaculum’은 천막이나 오두막을 뜻하는데, ‘천막’은 탈출기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맺을 때,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머무시고자 이동식 성소를 마련하라고 명하셨고, 성경에서는 ‘만남의 천막’(탈출 33,7-11)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즉, 천막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이 모세를 통해 만난 거룩한 장소였고,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특별한 곳입니다.
‘하느님의 거처’라는 뜻을 지닌 감실(Tabernaculum)은 처음부터 교회에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 초창기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나 질병으로 인하여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이 작은 상자에 성체를 담아 자신의 집으로 가져와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난 후 성체는 일반 가정이 아닌 성당에만 보관하였고, 지금의 용도와 같게 되었습니다.
감실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미사 때 축성된 ‘성체를 보관’하고, 성찬례에 참여하지 못한 환자를 위해 성체를 모셔두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자들이 감실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가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감실 옆에는 불을 켜 놓아 성체가 모셔져 있음을 드러냅니다. 성경에 따르면 주님께서 모세에게 올리브를 짠 순수한 기름을 사용한 “등불을 만남의 천막 안 증언 궤 앞”(탈출 27,21)에 켜 두라고 명하셨고, 교회는 전통에 따라 등불을 켜 놓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현존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 주님이 얼마나 가까이 계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감실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사랑의 희생을 새롭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이며 우리에게 만남의 천막에서 주님의 얼굴을 친구처럼 마주한 모세의 기쁨을 경험하도록 초대합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탈출 3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