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복사를 하면서 가장 긴장된 순간은 미사 때 ‘성찬 전례’ 중 종을 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거나 헛치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 마음속으로 애쓰며 속을 태웠기 때문인데요, 아마 지금도 대부분의 복사는 저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사의 중심은 성찬 전례이고 말씀 전례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선입견이 생겼었습니다.
그러나 제 선입견과는 달리, 미사는 아주 일찍부터 “성찬 전례”와 함께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선포하고 해설하는 “말씀 전례”도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말씀 전례는 성찬 전례를 준비하는 과정쯤으로 왜곡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이 두 부분이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오직 하나의 경신례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 미사경본 총지침은 “교회 안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신다.”(29항)라고 말함으로써 성경 봉독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신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토록 큰일을 위해 교회는 독서집과 복음집을 놓을 수 있을만큼 넓은 ‘독서대’(ambo:상판이 비스듬히 놓인 보면대)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독서대는 신자들이 독서자를 잘 바라볼 수 있고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제단 위에 설치하는데, 이는 군중을 가르치기 위해 산에 오르신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군중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율법학자들처럼 과거의 가르침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행위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구원과 무한한 사랑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독서대는 지금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바라보고 잘 듣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러한 독서대의 의미와 역할은 독서대의 축복 기도문(성자의 목소리를 저희에게 들려주소서!)에서도 그대로 발견됩니다. 주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독서대에서 전례주년에 따라 독서, 화답송 그리고 부활 찬송과 복음이 선포됩니다. 또한, 강론과 신자들의 기도 역시 이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309항 참조).
이처럼 성경의 독서로 우리에게 말씀의 식탁이 마련되었고, 이곳에서 울려 퍼진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고 강화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독서대’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카파르나움의 한 백인대장이 보여준 믿음입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마태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