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 딱 둘 뿐인 소중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저의 ‘조카들’입니다. 많은 신부님에게 그러하듯, 저에게도 ‘조카들’은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기쁨과 사랑을 주는 존재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첫째 조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조카들이 성장하는 모습은 제 머리와 마음에, 또 핸드폰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중 첫째 조카와 관련된 ‘특별한 순간’ 하나를 꺼내 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는 밤에도 수시로 깨는 아기를 돌봐주고 어르고 달래주죠. 제 첫째 조카가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을 즈음의 어느 날,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오후 8시’가 되자, 때가 된 듯 조카는 ‘잠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였던 조카는 눈을 감는 게 두려운 것처럼 잠투정을 꽤 요란하게 부렸죠. 아빠와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인 저까지 서로 번갈아 가며 조카를 안아 달래줬지만 아가의 잠투정은 멈추지 않았고, 100일간 그 모습을 지켜보아 온 ‘아빠’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제 ‘마의 시간’이 시작되었어. 이 시간에는 누가 안아도 소용이 없어. 지금은 오직 (엄마의 역할을 도맡은) ‘할머니’만이 달래줄 수 있어.”
결국, 조카는 ‘할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음성’과 토닥여 주는 ‘손길’에 서서히 차분해졌고, ‘함마, 맘마, 마, 마…’라고 옹알이하다가 곤히 잠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갈릴래아 호수 ‘저쪽’으로 건너갑니다. 복음에서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감’은 ‘인생 여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풍랑’을 맞이하죠. 실제로 갈릴래아 호수에선 1년에 4~5번 정도 3~4m 이상의 큰 파도가 치는데, ‘풍랑을 맞이함’은 우리의 인생이 늘 평탄할 수만은 없음을, 때론 시련에 맞닥뜨림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풍랑’에 제자들은 힘겨워하다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호수를 향해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라고 복음은 전하죠. 여기서 “조용히 하여라!”라고 꾸짖으심은 ‘마귀를 쫓아내셨을 때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아주 고요해졌다.”라는 구절에는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연다.’라는 숨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시련’이 찾아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때가 되면 갈릴래아 호수에 ‘풍랑’이 이는 것처럼 우리 일상에도 ‘시련’이라는 ‘원치 않는 손님’이 때때로 찾아옵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은 ‘시련’을 맞이한 우리에게, 잠투정으로 칭얼대는 아기를 품에 안아 달래주는 엄마처럼, 우리의 힘겨움을 들으시고, 바라보시고, 손길을 건네신다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