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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걱정 없이 사랑을 나누려고 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4-06-21 09:47:57 조회수 : 395

지금의 나를 위해, get time, get love, get smile ***!”

아직은 이루고 싶은 꿈이 셀 수 없이 많으니까, 그녀는 ***을 먹습니다.”

 

위의 ***에 공통으로 들어갈 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 피임약 이름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채 광고 문구를 보면 몸에 좋은 보약이나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요.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TV나 라디오에서 피임약이나 콘돔 광고를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피임약에 광고를 대중매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 시간에도 피임 방법에 대한 교육이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광고와 성교육의 요점은, 피임이 임신 걱정 없이 남녀가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게끔 해주니, 피임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과연 피임약은 남녀의 부담을 덜어주고 특히 여성의 미래를 지켜주는 명약일까요? 그렇다면 교회는 왜 피임약 사용을 반대할까요?

 

우선, 교회는 전통적으로 자녀 출산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산아제한의 개념 자체를 거부해 왔습니다. 교회는 부부간의 사랑이 본질적으로 자녀 출산을 지향한다고 믿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공피임은 부부 사랑의 완전성을 이루는 출산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혼인성사의 본질에 위배되고, 생명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므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물론 이러한 교회의 입장은 종종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낙태처럼 인간의 생명이 걸린 문제도 아닌데, 교회가 굳이 이런 사적인 부분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피임을 단죄하는 교회의 입장을 재확인한 회칙 인간생명(Humanae vitae, 1968)이 반포된 후 신학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고, 실제로 적잖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쟁에서도 모든 신학자가 동의했던 것은, 자녀가 부부 사랑의 본질에 속한다는 것과 부부의 사랑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회의 가치관이 달라져도 사랑이 생명을 지향하고 후원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거부하는 안전한사랑이 과연 참된 사랑일 수 있을까요?

피임에 안전한, 성공적인, 꿈을 이루기 위한등의 긍정적인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아직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반생명적 인식과 경제논리를 주입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피임의 범위를 확대해, 사실상 낙태약을 응급피임약으로 칭하려는 시도 또한 각별히 주의해야겠습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생명을 낳아 기르는 것은 부부에게 큰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천 년 전 성모 마리아의 모험과 성 요셉의 동의가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왔듯이, 우리의 예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는 사랑은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