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농민 주일 담화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항).
기후 재난 시기에 유기농을 다시 생각하여 봅시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기후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고, 지구촌 곳곳이 기후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금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땅을 가꾸고 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을 생각하여 봅니다. 생명을 가꾸고 길러 내어 소출을 얻는 농사는 지속 가능하여야 합니다. 곧 우리가 먹을 것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땅이 훼손되지 않고 계속해서 작물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농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합성 비료와 살충제는 토양의 미생물을 죽이고 토양 구조를 파괴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토양을 황폐시킵니다. 이렇게 황폐해진 땅에서는 작물을 키울 수 없게 됩니다. 현대 농업은 사실상 ‘산업농’에 가깝습니다. 화학 비료와 살충제, 고엽제 등 유독 물질의 사용을 전제로 하는 농업은, 다시 말해서 생명과 돌봄이 아니라 ‘죽음’을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사는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인데, 공산품과 같은 규격화된 농산물을 얻으려고 생명에 반대되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죽음과 파괴는 우리가 자연에 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찬미받으소서」, 3-6항 참조)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폭력입니다. 산업농의 폭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물을 오염시킨다는 점입니다. 농촌에서는 지하수를 마셔 왔는데, 이제 그 지하수가 많은 제초제와 살충제 등의 유해 화학 물질로 오염되었습니다. 이런 물을 마시는 것은 우리 몸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이 오염된 물이 작물 재배에도 사용됨으로써, 그것을 먹는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 갖가지 위험을 낳습니다.
이 모든 것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유기농입니다. 유기농에서는 합성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작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토양 미생물에서 얻습니다. 이 미생물들은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생명체는 사람들이 ‘해충’이나 ‘잡초’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산업농이 해충과 잡초를 박멸하려는 접근 방식을 가진다면, 유기농은 모든 생명체의 중요성과 상호 연결성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유기농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체의 대량 학살을 가져올 수 있는 산업 농업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 농업을 선택함으로써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을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찬미받으소서」, 217항).
생태 사도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하느님께 바칠 예물을 준비하며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교회는 성체성사의 거행 안에서 우리의 노동으로 마련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신비를 체험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고 교회의 신원과 사명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화학 농약으로 말미암아 황폐해진 땅과 그곳에서 같이 죽어 가는 생명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땅과 생명을 보호하려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회개로 이끄는 대표적인 ‘생태 사도’입니다. 대규모 산업 농업을 지향하는 정부 정책과, 단일한 규격의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형태 때문에 유기 농업을 실천하는 농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땅은 애정을 주면 풍성한 결실로 보답하여 줍니다. 그러나 유기 농업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사회가 그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땅을 보호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나야 합니다. 특별히 가톨릭 농민 회원들은 현재의 어려움에도 ‘땅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아 ‘생태 사도’로서 굳건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이 자신들의 손을 통해서 자라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지는 것을 기뻐하며, 꿋꿋이 어려움을 견디어냅니다. 또한 이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외형이나 가격을 따지지 않고 꾸준히 선택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농 생활 공동체의 식구들로, 같은 ‘생태 사도’로서 서 있습니다.
이익과 물질 만능의 세상에 살면서도 희생과 투신을 통하여 복음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생태 사도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기후 변화로 말미암아 잦아진 이상 기후는 우리의 삶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당부에 따라 지금이라도 생태적인 삶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생태 사도’가 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농민 회원들과 우리농 생활 공동체 회원들과, 하느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질서에 따라 생명을 씨 뿌리고 가꾸며 키워 내는 모든 분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서 생태 위기 시대임이 일깨워지고 모든 생명에 구원의 희망이 전하여질 것입니다.
2023년 7월 16일 제28회 농민 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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