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우리가 함께 사는 지구는 우리 공동의 집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집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국제 연합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는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는 해결책으로 2040-2050년까지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여야 한다고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응답하여, 파리 기후 협약에 가입한 195개 국가는 각자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고 하여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대다수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실질적인 대응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수준에 비하여 탄소를 40%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감축 계획을 따져 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36.6억 톤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한다 하여도, 누적 배출량은 오히려 3억 930만 톤 더 늘어날 것입니다. 특히 더욱 문제인 것은 2018년 기준 국내 총배출량의 35.8%를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탄소 감축 목표를 11.4%만 줄이겠다고 목표치를 설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부족한 대응이라는 평가를 넘어,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무책임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환경 정책은 너나 없이 기후 위기에 맞서야 할 때인데도, 오히려 뒤로 가는 모양새입니다. 제주 제2공항과 새만금 공항 등 신공항 건설이 계획되어 있고, 세계적으로 탈석탄과 탈핵을 추구하는 반면 우리는 강릉과 삼척에 석탄 화력 발전소를 세우고, 신규 핵 발전소를 건설하며, 고리 2호기 등 노후 핵 발전소의 수명을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핵 발전소 부지 안에 사용 후 핵 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중간 저장 시설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더욱 우려됩니다. 2040-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면 탈석탄법을 제정하여 신규 석탄 화력 발전소와 노후 발전소 문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이는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위한 필수적인 책무입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허가 등에서 볼 수 있는, 생태계를 단순히 자본의 수익원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이후 12년이 흘렀음에도 주변 지역의 농수산물과 축산물에서는 여전히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겠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 뒤에 바다에 내보내겠다고는 하지만, ALPS로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오염수가 현 시점에서 전체의 약 70%나 되고, 삼중수소와 탄소-14는 전혀 처리하지 못합니다. 바다를 비롯하여 태평양 전체에 방사능 오염이 퍼질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인간의 활동이 불러온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산업계 등에서는 이에 반발하고 있어 대부분의 국가가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생태계 보호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지만, 지구를 위하여, 미래 세대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여야 합니다. 더불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정부는 시민들과 산업계를 이끌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을 추진하여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안이한 기대만 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행동할 때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 있습니다. 세계 기상 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WMO), 국제 연합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2022 오존층 감소에 대한 과학적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몬트리올 의정서’(Montreal Protocol) 발효 33년 만에 지구의 오존층이 놀랍게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것은 기후 위기 문제를 인류가 공동으로 해결하여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성과입니다.
인류는 1974년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통하여 우리에게 프레온 가스로 널리 알려진 염화 불화 탄소가 지구 상공에서 자외선을 만나면 분해되면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염화 불화 탄소는 우리의 안락한 삶을 위한 필수품인 냉장고나 에어컨, 헤어스프레이 등에 사용하였던 인공 화합물입니다. 1985년에 인공위성 사진을 통하여 남극 상공에서 실제로 오존층 구멍이 발견되었고, 2006년에는 오존층 구멍이 역대 최대치인 2600만㎢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인류는 이 난제를 해결하고자 ‘오존층 파괴 물질의 규제에 관한 국제 협약’으로 불리는 ‘몬트리올 의정서’를 1987년 9월 16일에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1989년 1월에 발효되면서 염화 불화 탄소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습니다. 염화 불화 탄소가 대기 중에서 50-100년 정도 존속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몬트리올 의정서’의 효력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전 지구적 노력은 지구 기온 상승을 0.5-1°C 억제하는 효과를 내고, 해마다 200만 명이 피부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침내 그 효과를 우리가 직접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인류가 환경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한다면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공동의 집인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오존층 회복 소식은 희망찬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몬트리올 의정서’의 성공적 이행은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증명하며, 기후 변화와 같은 세계적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노력의 필요성을 재확인합니다.
생태계 문제는 단순히 경제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과 주변 생명체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생태계 문제는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칠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어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당장의 이익은 얻을 수 있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돈으로도 복구할 수 없는 엄청난 경제적 생태적 피해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피해는 회복이 어려워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하여집니다. “미래 세대에게 살 만한 지구를 물려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상에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 것이기에 우리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찬미받으소서」, 160항). 우리 후손들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태계를 물려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파괴된 생태계를 물려주는 것은 결국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고 보호하며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지속 가능한 세상은 현재의 인류가 미래의 인류를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 끝 날까지 인류를 축복하실 것이라 약속하신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후손들을 위하여 지금 바로 행동합시다.
2023년 6월 5일 환경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 현 동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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