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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3년 제31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1-26 조회수 : 1510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31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23년 2월 11일)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연민은 치유의 시노달리타스 실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질병은 우리의 인간적 상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고립되고 버려진 채로 겪는다면, 돌봄과 연민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질병은 비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여정을 걸어갈 때에 누군가 아픔을 느끼고 누군가 피로 또는 그 길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멈추어 서야 하는 것은 유별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순간들에서 어떻게 함께 걸어가고 있는지를 봅니다. 참으로 우리가 그 여정을 동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저마다 자기 이익만 좇고 다른 이들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저 같은 길 위에 있는 개인인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온 교회가 시노달리타스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제31차 세계 병자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특히 취약함과 질병의 체험을 통하여 친밀함과 연민과 자애로, 곧 하느님의 방식으로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성찰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서를 통하여 하느님 계시의 정점 가운데 하나인 이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에제 34,15-16). 혼란과 질병과 쇠약함을 체험하는 것은 인간 여정의 일부입니다. 이는 우리를 하느님 백성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관심의 한가운데로 데려갑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시며 이 여정에서 당신 자녀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리기를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버리는 문화에 저항할 수 있는, 참으로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는 법을 그분께 배웁시다.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새롭게 읽어 보도록 권고합니다. 우리가 닫힌 세상의 “그림자”에서 어떻게 빠져나와 “열린 세상을 상상하고 이룩할” 수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자 저는 이 비유를 선택하였습니다(「모든 형제들」, 56항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와 오늘날 형제애를 거부하는 여러 방식들은 깊이 맞물려 있습니다. 특히 두들겨 맞고 강도를 당한 한 남자가 길가에 버려져 있는 모습은 너무도 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때에 버려져 있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대한 침해가 자연적 원인에서 비롯되는지 불의와 폭력으로 빚어지는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불평등 수위의 상승과 소수 이익의 지배가 이제는 인간 환경 전반에 영향을 끼쳐 어떤 경험이라도 그저 ‘자연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든 고통이 ‘문화’의 맥락과 여러 문화적 모순들 안에서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고독과 버려짐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특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참혹함은 다른 어떤 불의보다 더 쉽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말해 주듯이, 그러한 참혹함을 없애는 데에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연민의 마음으로 움직이는 짧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신실하고 종교적이라고 여겨지는 두 행인이 다친 사람을 보고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행인 곧 경멸받는 이방인인 한 사마리아인이 연민으로 마음이 움직여 길 위의 낯선 이를 형제로 여기고 돌보아 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변화를 일으키고 세상을 더욱 형제적인 곳으로 만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질병에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이 듦을 인정조차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취약함에 겁먹고, 만연한 능률만능주의 문화는 취약함을 숨기라고 우리를 다그치며 인간의 약함이 설 자리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악이 불쑥 쳐들어와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초주검이 되어 땅에 쓰러져 버립니다. 게다가, 그러한 때에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서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약해져 있는 순간에,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우리 스스로 다른 이들을 버려야 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독이 시작되고 우리는 하느님께도 버림받은 것처럼 쓰라린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타인과 맺는 관계 그리고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훼손된다면 우리가 주님과 이루는 평화 안에 머무르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온 교회가 참다운 ‘야전 병원’이 되려면, 질병 안에서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복음적 모범을 잣대로 삼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특히 우리 시대의 역사적 상황 안에서 돌봄의 실천을 통하여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약하고 힘없는 이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멈추어 서고 가까이 다가가며 치유하고 일으켜 주는 법을 아는 연민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아픈 이들의 고난은 마치 형제도 자매도 없다는 듯 자기 갈 길만 가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깨고 들어가 그 발걸음을 늦추는 부르심입니다. 


세계 병자의 날은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친밀함과 기도로의 초대입니다. 아울러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길에 대한 하느님 백성, 보건의료 기관, 시민 사회 단체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에제키엘 예언서는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두는 우선순위를 신랄하게 심판합니다.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에제 34, 3-4).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빛을 비추고 시기적절합니다. 이는 고발할 때뿐만 아니라 제안할 때도 그렇습니다. 사실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결론은 얼굴을 마주한 만남에서 시작한 형제애의 실천이 어떻게 조직적인 돌봄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제시합니다. 여관, 여관 주인, 비용 그리고 추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약속(루카 10,34-35 참조) 등의 요인은 모두, 세상 모든 곳에서 날마다 악을 마주하는 선을 지키는 의료인, 사회복지사, 가족 구성원, 그리고 자원봉사자의 헌신을 가리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겪으면서 우리는 보건 의료와 관련 연구 분야에서 날마다 종사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영웅들을 기리는 것으로 이토록 거대한 집단적 비극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전문 지식과 연대의 수많은 연결망을 압박했고, 기존의 공공복지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감사는 기본적이며 적절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각 사람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나라에서 전략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행위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여관 주인에게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루카 10,35) 하고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저마다에게도 같은 요청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하고 이르십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비유는 다른 이들의 약함을 자기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어떤 계획을 통해서 한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들은 배척의 사회가 건설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고 회복시켜 공동선을 이루게 합니다”(「모든 형제들」, 67항).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만 달성되는 충만함을 위하여 빚어졌습니다. 고통 앞에서 무관심한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모든 형제들」, 68항).


2023년 2월 11일, 루르드 성지를 생각해봅시다. 루르드 성지는 이 시대를 위하여 교회에 맡겨진 예언적 가르침입니다. 기능을 잘하는 것과 생산적인 이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하느님 백성의 중심에 병자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이가 소중하고 아무도 버려지거나 소외되지 않는 인류의 표징으로서 병자들과 함께 나아갑니다. 


병자의 치유이신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청하며 병자 여러분 모두를 맡겨 드립니다. 또한 가정에서, 일, 연구 또는 자원봉사를 통하여 그들을 돌보는 여러분과 형제애의 개인적, 교회적, 시민적 유대를 맺기 위하여 헌신하는 이들인 여러분을 맡겨 드립니다. 모든 이에게 진심 어린 교황 강복을 보냅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3년 1월 10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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