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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3년 제56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2-27 조회수 : 1381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56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23년 1월 1일)



아무도 혼자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에서 벗어나 평화의 길로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다시 출발하기



1.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1테살 5,1-2).


이 말씀으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도 공동체를 변함없이 지키도록, 그들의 마음과 발을 굳건하게 뿌리박게 하고 그들의 시선을 주변 세상과 역사의 사건들에 고정하도록 그 공동체를 격려하였습니다. 비극적인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덮치는 것 같을 때, 그리고 우리가 불의와 고통의 어둡고 힘겨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고 느낄 때, 우리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다정히 동반하시며 지쳐 있는 우리를 지탱하시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길을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 바라고 하느님을 신뢰하고자 마음을 열어두도록 부름받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바오로 성인은, 선과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며 깨어 있으라고 공동체에 끊임없이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1테살 5,6). 바오로 성인의 말은 두려움이나 슬픔이나 체념으로 침잠하지 않고 혼란이나 실망에 굴복하지 않으며 계속 깨어 있으라는 초대입니다. 오히려 가장 어두울 때조차 우리는 끊임없이 지켜보는 파수꾼과 같아야 하고 새벽의 첫 빛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2.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는 우리를 어두운 밤으로 곤두박질치게 하였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었고 우리의 계획과 생활 습관을 틀어지게 하였으며 심지어 가장 부유한 사회에서 보였던 평온함도 깨뜨렸습니다. 혼란과 고통을 만들고 수많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도전의 회오리바람과 과학적 관점에서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는 가운데, 엄청난 고통을 완화하고 가능한 치료법을 찾아내고자 전 세계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동원되었습니다. 동시에 정치 권력은 위급상황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체계화하고 관리하고자 조처하여야 했습니다. 


코로나19는 그 물리적 양상에 더하여, 많은 개인과 가정에 전반적인 불안을 일으켰습니다. 장기화된 격리 기간과 자유에 대한 여러 제약이 중대한 장기적 여파와 함께 이러한 불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우리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들추어낸 우리의 사회와 경제 질서의 균열 그리고 전면에 드러내 버린 모순과 불평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는 수많은 사람의 고용 안정을 위협하였고, 우리 사회에서, 특히 가난한 이들과 어려움에 놓인 이들에게서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고독의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우리는 세상 여러 곳에서 봉쇄 기간에 일자리 없이 그리고 아무런 지원 없이 남겨진 수많은 비공식 노동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낙담과 비통의 감정들을 만들어 내는 조건들 속에서 진보를 이루어낸 개인과 사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감정들은 사회 갈등과 좌절과 여러 형태의 폭력을 조장하면서 평화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약화시킵니다. 실제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 세상의 가장 평화로운 부분조차 뒤흔들었고 취약함의 여러 형태를 드러낸 듯합니다. 


3. 3년이 흘렀고 이제는 우리가 개인으로도 공동체로도 질문하고 배우며 성장하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적절한 때입니다. 그리고 이는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저는, 우리가 위기의 순간들에서 언제나 똑같이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 곧 이전보다 좋아질 수도 있지만 나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미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말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낡은 습관의 족쇄를 풀어버리려면, 더욱 잘 채비하고 있으려면, 새로운 일에 과감히 도전하려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길들을 따라가야 하는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 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생명과 희망의 표징을 알아볼 수 있는가?’


우리의 삶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허약함을 직접 겪은 뒤에 우리가 코로나19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우리 모두에게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위대하지만 가장 깨어지기 쉬운 보물은, 형제자매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인류애임을 깨달았고, 아무도 혼자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형제애가 자라나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보편 가치들을 우리가 함께 찾고 드높이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추구해 왔던 정의와 화합과 평화의 약속 자체를 양보하면서까지 우리가 진보와 기술과 세계화의 효과를 과신할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와 우상화에 중독된 상태로 변해 버렸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안에서 만연하고 있는 불평등과 불의, 빈곤과 소외의 문제는 불안과 갈등에 끊임없이 기름을 붓고 폭력과 심지어 전쟁까지도 일으킵니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이 모든 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긍정적 효과로는 은혜로운 겸손의 회복, 특정 소비주의 주장들의 재고, 타인의 고통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필요에 더욱 잘 응답하게 해 주는 연대 의식의 쇄신이 있습니다. 또한 참으로 영웅적이었던 사례들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이가 위기와 그 혼란에서 벗어나게 도우려 최선을 다하여 쉬지 않고 일하였던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민족과 나라를 비롯하여 모든 이가 “함께”라는 말을 다시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필요성을 더욱더 인식하게 해 주었습니다. 바로 함께, 형제애와 연대 안에서 우리는 평화를 이루고 정의를 보장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극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도전에 대처하려고 각자 개별 이익들을 뒤로하고 힘을 모았던 사회 단체들, 사립·공립 기관들, 국제 기구들에서 나왔습니다. 형제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사랑에서 나오는 평화라야만 우리가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전 세계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4. 그럼에도 우리가 코로나19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암흑의 시간이 끝났다는 희망을 감히 품었던 그 순간에도 끔찍한 새 재앙이 인류를 덮쳤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재앙의 사나운 공격을 목격하였습니다. 곧, 어느 모로는 코로나19에 비견되지만 비난받아 마땅한 결정이 부추긴 또 하나의 전쟁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죄한 희생자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고, 직접적인 영향에 놓인 이들만이 아니라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그 이차적 영향의 고통을 겪는 이들 사이에서도 모든 이에게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불안감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곡물 부족과 연료 가격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이는 우리가 바라거나 기대하던 코로나 이후 시대가 아닙니다. 전 세계의 모든 다른 분쟁과 더불어 이 전쟁은 직접적으로 관계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패배를 나타냅니다. 코로나19 백신은 찾았지만, 전쟁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전쟁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죄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르 7,17-23 참조).        

   

5.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요청받고 있습니까? 가장 먼저, 우리가 겪은 위기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도록, 역사의 이 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습적 기준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는 개인적 이익이나 국가적 이익을 위한 자리를 갈구하려고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더 큰 공동체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열어두고서 공동선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을 지키려는 데에만 몰두해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모두 우리 사회와 우리 지구를 치유하는 데에 애쓰고,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며, 참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에 진심으로 헌신하도록 할 때가 왔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코로나19의 위급 상황 이후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위기들이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고, 우리가 개별 문제들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책임과 연민의 정신으로 우리 세상의 도전들을 직면하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는 모든 이를 위한 공중 보건을 보장하는 문제를 다시 논의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강화하고 끊임없이 빈곤과 죽음을 초래하는 분쟁과 전쟁을 종식하는 활동을 촉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데에 그리고 기후 변화와 맞서 싸우기 위한 분명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실행하는 데에 시급히 동참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최저 임금조차 받지 못하여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원하면서, 불평등이라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모든 이를 위한 식량과 품위 있는 노동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모든 이의 문제는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주민과 우리 사회들이 내버린 이들을 환대하고 통합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들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하느님의 무한하고 자비로우신 사랑에 힘입은 이타심으로 이러한 상황들에 관대하게 응답할 때에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고 하느님 나라의 확장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나라입니다.


이러한 성찰들을 나누면서 저는 다가오는 새해에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 교훈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국가와 정부의 최고 수반들, 국제 기구들의 수장들,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선의를 지닌 모든 이가 평화의 장인으로서 이번 한 해를 잘 일구어 나가도록 날마다 애쓰리라는 믿음을 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평화의 모후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온 세상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바티칸에서 

2022년 12월 8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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