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자선 주일 담화
모든 본당은 카리타스의 전초 기지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4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 왔고, 올해로 제39회를 맞이합니다. 자선 주일은 국내의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대유행이 많이 완화되어, 올해는 일상으로 조금씩 회복해 가는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지난여름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살기가 너무 힘들다.’라며 세상을 등진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암과 난치병으로 투병하던 그분들은 의료 보험료를 낼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42만 원의 월세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고된 삶이었습니다. 장례조차 수원시가 공영 장례로 지원하였을 만큼 이분들은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채 살았습니다. 그분들이 고통을 겪는 동안 국가는 물론이고 주변의 누구도 그러한 어려움을 알아채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수원의 세 모녀처럼 월 5만 원 이하의 건강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가 73만 3천 가구에 이른다고 합니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22년 6월 통계). 이는 우리 주변에 위기 가정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 또 있었습니다. 보육 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하던 자립 준비 청년(보호 종료 아동)이 생활고와 외로움 등을 호소하다 생을 마감하는 일이 올여름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시설을 나오는 자립 준비 청년은 해마다 2,500명에 이릅니다. 이 젊은이들에 대한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절실합니다.
어려움 속에 살고 있는 이웃으로 북한 이탈 주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북한 이탈 주민은 누적 33,815명이라고 합니다(2022년 통일부 통계, 2021년 12월 31일 기준). 그분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크고 작은 차별과 편견, 가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몇 년 전 굶주리며 죽어 간 북한 이탈 주민 모자의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연도 아직 기억하실 것입니다. 최근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유명을 달리한 북한 이탈 주민의 안타까운 소식이 경남 김해시와 서울 양천구에서 있었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온 북한 이탈 형제자매들에게 우리의 따뜻한 관심과 환대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사회 복지 현안 가운데 하나가 빈곤 노인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인데 더군다나 노인 빈곤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노령 인구도 계속 늘어가고 있습니다. 거동이 힘든 가난한 독거노인이야말로 이웃의 돌봄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보건복지부 2021년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숙인은 총 8,956명으로, 거리 노숙인은 1,595명이며 시설 노숙인은 7,361명입니다. 전국 5개 지역 10개의 쪽방 상담소가 관리하는 쪽방 주민 5,448명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14,404명으로 늘어납니다. 이 밖에도 고시원과 여인숙, 옥탑방, 지하 등에 머무는 주거 취약 계층까지 포함하면, 인간 생존의 기본적 조건인 의식주의 보장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취약 계층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 이주 노동자입니다. 실제로 이주 노동자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중요한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분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 장치는 여전히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2020년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 속헹 씨가 추운 겨울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가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농촌이나 어촌 등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주 노동자의 산재 사고 발생과 사망률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보다 훨씬 높습니다.
사회적 취약 계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기후 위기입니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혹한 등 극단적인 기후 환경은 누구보다도 사회적으로 고립된 위기 가정과 자립 준비 청년, 북한 이탈 주민, 빈곤 노인, 노숙인, 이주 노동자 등과 같은 취약 계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올 8월 초 100년 만의 폭우가 서울에 쏟아졌을 때,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서 희생된 발달 장애인 일가족 세 명의 안타까운 소식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선 주일이 일회적인 나눔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선 주일은 우리 주변에 다양한 이웃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채 외로운 삶을 이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아파하며, 우리의 관심과 연대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이 기회에 각 교구와 수도회의 사회 복지 시설이나 기관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계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한편, 곤경에 놓인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실천이 교구와 수도회의 사회 복지 기구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본당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확산되기 바랍니다. 가톨릭 교회의 본당 조직은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2021년)에 따르면, 한국 가톨릭 교회에 사제가 상주하는 본당은 1,779군데입니다. 각 본당에는 구역 반이 있고, 거기에 레지오 마리애, 빈첸시오회, 나눔의 묵상회 등 여러 사도직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당이 관내 구석구석에서 위기 가정을 찾아내고 사회적 취약 계층과 함께하는 ‘사랑의 전초 기지’가 되기에 적합한 구조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애덕 활동을 카리타스(Caritas)라고 부릅니다. 카리타스는 이웃 사랑, 애덕, 자선을 의미하는 라틴어로서, 예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돌보는 사랑을 뜻합니다. 자선 주일에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모든 본당이 발 벗고 나서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이 동참하는 데에 주님께서 강복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2022년 12월 1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주교 유 경 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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