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개막 미사 후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왼쪽)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 지금 당장 행동하자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1.5.24.
지난 8월 18일 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녹색 성장 기본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된다면, 앞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비롯하여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법이 될 것입니다.
많은 시민 단체의 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50년까지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여 극심한 기후 재앙을 막아 내야 하는데, 이 법안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안에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한다는 하한선을 정해 두었지만,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2010년 대비 45%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고려할 때 무려 1억 톤 이상을 더 배출하게 되는 셈입니다. 기후 위기 대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누적’ 온실가스입니다. 제때에 적절한 양을 감축하지 않으면 2050 탄소 중립은 무의미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2020년 5월, 기후 위기 성명서를 통하여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기후 정의에 입각하여 석탄 화력 발전소의 과감한 감축, 재생 에너지의 확대” 등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정책 등을 비롯한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2020년 10월 16일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단의 특별 사목 교서를 통하여,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신앙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였습니다. 정부는 2021년 5월 말,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하여 2050년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국회는 관련 법안을 심의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을 보면, 급격히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는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빨리 이 길에 들어선다면 더 많은 이의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과도한 생산과 소비, 생태계 파괴와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성장 신화는, 새로운 변화와 전환의 흐름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후 위기의 시대,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이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동시에 ‘녹색 성장’이라는 구호 속에서 개발과 성장의 어두운 그림자와 시대적 전환의 흐름을 계속해서 늦추려는 유혹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 대응에서 책임의 차등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엄청난 온실가스 배출을 대가로 높은 수준의 산업화의 혜택을 누린 나라들은 자신이 초래한 문제의 해결에 더 커다란 책임을 져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70항). 또한, 기후 위기와 감염병의 지속 상황 등 전 세계인의 삶의 환경이 악화될수록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무력한 이들과 취약한 이들의 요구’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52항).
정부와 국회는 가까운 미래의 이익이나 경제적인 이득을 꾀하고, 힘 있는 이들의 요구만을 수용하기보다, 사회적 약자들과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더욱 정의로운 사회,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책을 시행할 뿐만 아니라 이에 맞는 정의로운 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30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 올바른 해결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2050년에 진정으로 안전하고 평화롭고 정의에 입각한 지구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참된 ‘전환’을 이루려면, 녹색 성장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기후 위기 대응을 늦출 우려가 있는 법 제정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미 더 높은 단계의 녹색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맞게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 정부에 촉구합니다. 실효성 있는 목표 설정으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고, 사회적 약자들과 미래 세대를 위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십시오.
- 다시 한번 국회에 촉구합니다.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탄소 중립 관련 법을 제정하십시오.
2021년 8월 24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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