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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17년 주님 성탄 대축일 메시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17-12-22 조회수 : 3098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 소통과 참여로 쇄신하는 수원교구
  신앙의 기쁨!  젊은이와 함께!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생명의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1.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시어 세상의 온갖 시련으로 아파하는 우리를 위로하며 안아 주십니다. 캄캄한 어둠의 터널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우리를 한줄기 빛으로 인도하시며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토닥여 주십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요한 1,4). 우리는 그 빛을 보았습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보았습니다.


2.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그분의 눈길을 마주합니다. 이미 나를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운 눈길로 위로하시며 안아주십니다.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주님 품에 기대어 평화를 느껴봅니다. 그리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삶이지만 충분히 힘들고 수고했기에 ‘애써줘서 고맙다’는 한마디 위로가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비록 앞으로 더 잘 살아낼 자신도 용기도 없지만, 그래도 잠시 머무는 주님 안의 평화가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 미소 짓게 합니다.


3. 낯선 땅 베들레헴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마구간 구석 한자리를 얻어 어렵사리 해산하는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어서 서둘러 떠나라는 주님의 말씀에 혹여 들키지나 않을까 황망히 떠날 채비를 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도 한 번 쯤은 겪었을 외롭고 서러운 처지에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음을 공감하며 우리와 같은 처지로 세상에 오신 주님을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경배합니다.


4. 하지만 세상의 왕은 구세주의 탄생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것이 어린 생명이라 할지라도 장차 내게 위협이 될 수 있다면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많은 무죄한 어린 생명이 예수님을 대신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상의 왕은 지금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장차 불행해질 것이라는 이유로 힘없고 나약한 어린 생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기까지 합니다. 그 대가로 얻게 되는 여분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 것이 될지는 생각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5.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과 그 곁에 다소곳이 앉아 계신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몇 마리의 양들과 목동들이 전부인 성탄의 밤은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성탄의 밤은 누추하고 외롭고 서러운 밤입니다. 앞으로 헤쳐가야 할 역경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두려운 밤입니다. 누군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꿈꾸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눈앞에 놓인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기만 합니다. 이 밤이 새기 전에 서둘러 떠나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도 그 마음을 아시는지 고요히 숨죽여 잠들어 계십니다.


6. 성탄의 이 밤, 외롭고 두려운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바라보며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생각합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의 어두움이 더 짙게 드리워진 저 밖의 세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끝도 없는 어둠의 저편을 응시한 채 그래도 용기를 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지 않았을까요? 세상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요셉은 마리아에게 마리아는 요셉에게 서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나 혼자 덩그마니 남아있는 세상은 너무나 외롭고 힘이 듭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야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끝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에 맞서 용기를 내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수많은 젊은이에게 한없는 사랑과 격려의 인사를 보내야 합니다.


7. 누추한 마구간으로 동방의 현자들이 찾아온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마리아와 요셉은 영문도 모른 채 동방의 세 현자를 맞이하고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하심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입니다. 사실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살면서 모진 풍파를 겪어낸 모든 노인은 지혜로 가득한 현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 안에 주님의 섭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인들의 지혜를 경청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먼저 주님을 알아 뵙고 찾아와 경배한 이들입니다.


8. 온갖 유혹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유혹을 떨쳐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는 교우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신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자부심은 전 세계 모든 교회의 귀감이며 모범입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영적 자산과 실천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평신도 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교우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신도 신앙인으로서 성탄의 신비가 전하는 소중한 가치들– 생명, 사랑, 존중, 배려, 나눔, 희생 –을 세상에 선포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어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7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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