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쇄신
친애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1. 수원교구는 지난 2013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기념하며 교구의 미래 복음화를 위한 지표로서『50주년 교서』를 반포하였습니다. 이 교서에서 저는,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와 교회의 여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복음적 가치를 “소통과 참여를 통한 쇄신”에 두고, 이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전 교구민이 일치하여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어서 2015년 “소통”을 주제로, 2016년 “참여”를 주제로 온 교구민이 “쇄신”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도록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담아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저는 지난해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해”를 은혜로이 지낸 것을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2017년을 맞이하며 “말씀과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쇄신”을 주제로 사목 교서를 발표합니다.
2. 하느님의 말씀과 소통하고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성찰은 우리를 쇄신된 삶으로 초대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우리 교회는 끊임없는 쇄신의 노력을 통해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 안에서 새 복음화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회는 더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수도권에 위치한 우리 교구는 급속한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외적으로는 계속 팽창하는 교세에 대응해야 하고, 내적으로는 교구민의 영적 갈증을 채우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교구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미래와 쇄신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보편 성사”인 교회의 쇄신은 그 신비체인 하느님의 백성 들이 “말씀과 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다 깊고 풍요롭게 체험하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쇄신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
3. 그리스도인의 쇄신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 원천을 두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세상에 본질적으로 ‘전적인’ 새로움을 가져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신선하고 질적인 새로움은 우선 그분께서 전해주신 가르침에서 드러납니다. 또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 안에서도 드러나고, 제자들에게 남겨 주신 ‘새 계명’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새로움은 십자가상의 희생 제사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신비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이나 힘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낮춤으로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비움과 섬김의 삶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요 교회 쇄신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에게도 신앙생활의 쇄신을 통해 교회의 구원활동에 참여하도록 인도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비움과 섬김의 삶으로 그리 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로마 13,14 참조)
신앙 쇄신의 두 축
4. 교회의 쇄신은 그 원천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교회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모든 새로움의 원천이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성사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교회 안에서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5. 교회의 쇄신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신자 개인은 물론 교회 공동체 전체를 변화시키는 신비로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이고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특히 교회의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신자 개개인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만나게 합니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를 맡은 이들과,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는 직무를 맡은 이들은 말씀을 듣는 이들이 보다 경건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깊이 있게 말씀을 경청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6.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론은 하느님 말씀이 신자들의 삶에서 더욱 깊이 이해되고 힘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풀이하는 직무를 맡은 사제들은 말씀의 단순함을 가리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강론이나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잃어버린 준비되지 않은 강론을 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 다. 또한 말씀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말과 행동이 강론과 모순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 영성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득찬 거룩한 전례를 통해서나, 영적 독서를 통해서나, 또는 적합한 성경 강좌 등을 통해서 성경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사목자들의 승인과 배려로 교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경사목에 보다 많은 본당과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참 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거룩한 독서와 접목하여 이루어지는 소공동체 모임의 말씀나누기를 통해 모든 신자들이 공동체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기를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은 언제나 교회의 친교 안에서 접근해야 비로소 개인주의적 접근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것은 교회가 전례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며 거행하는 것을 동반하고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성사를 통하여
8. 교회는 “구원의 보편 성사”입니다. “교회는 일곱 성사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를 표현합니다. 이 성사 덕분에 하느님의 은총이 구체적으로 신자 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신자들의 삶 전체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 행위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성체성사와 입문성사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모든 교역이나 사도직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생명을 얻고 또 생명을 주는 당신 살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노동과 모든 피조물을 당신과 하나 되어 봉헌하도록 부르시고 이끄신다.”라고 상기시켰습니 다. “성찬례가 참으로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이라면, 그리스도교 입문과정은 언제나 성체성사를 지향하여야 합니다. … 우리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는 것은 성체성사를 받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실제 사목은 그리스도교 입문 과정에 대한 더욱 통합적인 이해를 반영하여야 합니다. … 거룩한 성찬례는 그 리스도교 입문을 완성시키며, 그리스도인의 모든 성사 생활의 중심이자 목표가 됩니다 .”
10.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입문 과정 곧, 세례성사와 견진성사가 얼마나 통합적이고 효과적으로 신자들을 거룩한 성찬례로 인도하고 있는지 깊이 있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성급하게 단기적으로, 그리고 단절된 형태로 이루어 지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는 신자들을 교회 전례의 정점인 거룩한 성찬례로 인도하는데 충만한 성과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세례 받은 후 1, 2년 사이에 냉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교구 내 각 본당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문 과 정 전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는 교리교육의 기간, 교리교육의 단계적 과정 및 프로그램, 교리교사의 양성 및 관리, 본당-대리구-교구의 역할 등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본당 사목자와 교리교사 그리고 교구담당자 상호간에 유기적인 소통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11. 세속화의 거센 물결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양산함과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신자들을 둘러싼 문화는 죄의식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향이 있고, 합당한 영성체를 위해서는 하느님 은총 안에 있어야 함을 간과하는 피상적인 태도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들이 성찬례에 대한 정성과 애정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다양한 교육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해 성사에 대한 이해를 더욱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화해 성사의 직무를 맡은 사제들은 언제든지 기꺼이, 헌신적으로, 또한 합당한 준비와 자질을 갖추고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데에 주력함으로써 신자들이 고해성사의 부담을 갖지 않고 고해소를 즐겨 찾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2. “병자성사는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을 내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봉헌에 병자들을 일치시켜 그들도 성인들과 함께 통공의 신비 안에서 세상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특별히 병자성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성체는 병자에게 파스카 신비의 충만함을 엿볼 수 있게 하므로 적절하게 집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목 현 장의 변화에 따라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새로이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로 노인전문요양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구 대부분의 본당 관할 내에 이러한 노인요양원이 적어도 하나 이상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노인요양원에는 다양한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병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관할 사목구 주임의 권한과 역할, 이웃 본당 사목구 주임과의 협력, 병자영성체의 식별기준, 지역공동체의 유기적 협력 등에 관한 방안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성품성사와 혼인성사
13. 교회는 사제 서품이 성찬례의 합당한 거행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세속화의 영향으로 세계 교회는 사제부족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사제성소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몇몇 교구에서는 신학교의 유지문제를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젊은 부부들의 저출산 경향과 무분별한 독신주의는 교회 내의 성소자 감소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성소자 양성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선 성소자의 양적인 양성에 앞서, 교회 공동체가 보다 근본적으로 사제직이 갖는 의미를 성찰하고, 사제들은 스스로 그 직분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도록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 곧 사제들의 삶이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젊은이들이 사제들의 삶을 동경하고 따르기를 희망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세속화를 거스르는 사제들의 쇄신을 향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또한 양성에 있어서도 “현실적으로 또 마땅히 우려해야 할 사제 부족 문제에 대처하고자 성소 식별을 충분히 거치지 않거나, 또는 사제 직무에 필요한 자질들이 부족한 후보자를 신학교 양성과 성품에 허용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필요한 식별 없이 충분히 양성되지 못한 성직자가 성품을 받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려는 원의를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 혼인으로 결합된 남녀의 사랑은 당신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에서 정점에 이르는 그 사랑을 성사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혼인성사 안에서 거룩한 서약으로 맺어진 혼인의 유대 안에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이루는 “해소될 수 없고 배타적 이며 충실한 유대”가 그대로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속화의 거센 흐름은 이러한 혼인의 유대가 갖는 성사적 의미를 점점 더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이 개인의 성향과 경제적인 이유로 교회 밖에서 혼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을 미루거나 기피하는 경우를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혼인하려는 그리스도인 젊은이들만큼은 교회 안에서 성찬례와 결합된 사랑의 성사를 통해 혼인의 유대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일반예식장과 다를 바 없는 비용을 요구하면서 신앙인이기에 불편하고 볼품없는 환경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거룩한 성사를 거행해야 하는 교회가 장소의 사용을 이유로 경제적 논리를 적용하고, 그 때문에 혼인하려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간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더라도 혼인하려는 젊은이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하더라도 혼인이 거행되는 장소 자체가 매력을 잃어버린다면 결국 교회는 혼인성사를 베풀 기회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쇄신의 출발점인 가정
15. 가정은 자녀들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육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회 생활의 일차적인 영역입니다. 가정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성화시켜 나갑니다. 교회가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먹고 성장하듯이, 가정의 자녀들도 일상의 식탁에서 대화와 나눔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아먹고 성장 합니다. 교회의 전례가 거룩한 성찬례를 정점으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도 음식을 나누는 식탁의 자리에서 서로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빵을 나눌 때에 주님을 알아보았던 것처럼(루카 24,30-31), 우리들도 식탁에서 가족과 음식을 나누며 그 자리에 함께 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모범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16.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 안에서 구원의 성사가 성취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분 삶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 활동에 응답하는 순종적인 믿 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인 동정녀이신 그분께서는 하느님 뜻에 온전히 일치하여 살아가시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소중히 마음에 새기시고 그 말 씀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또한 아드님과 함께 극도의 고통을 겪으시며 당신에게서 나신 희생 제물에 사랑으로 일치하시어 아드님의 희생 제사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결합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의 모범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지극히 정성 된 마음으로 모셔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시며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16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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