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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13년 사순 시기 교황 담화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13-02-13 조회수 : 2076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2013년 사순 시기 담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의 해에 보내는 사순 시기는 우리가 믿음과 사랑의 관계를 성찰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여기서 믿음은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며 하느님과 이웃에게 헌신하는 길로 우리를 이끄는 것입니다.

1. 믿음,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

저는 제 첫 회칙에서 향주덕인 믿음과 사랑의 긴밀한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16). 요한 성인의 이 근본적인 말씀에서 시작하여, 저는 다음과 같이 성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므로(1요한 4,10 참조), 사랑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계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은총에 대한 응답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드러난 사랑,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무조건적이고 ‘열정적인’ 그 사랑의 계시를 우리가 이처럼 인격적으로 우리의 역량을 다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만나는 데에는 마음만이 아니라 지성도 작용합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인식하는 것은 사랑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며, 우리의 의지가 그분의 의지에 순응함으로써 우리의 지성과 의지, 감정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의 행위 안에서 결합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입니다.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완성되지도 않습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7항).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사랑의 일꾼들’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만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웃 사랑은 더 이상, 이른바 외부에서 강요되는 계명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 곧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귀결이 될 것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1항).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바로 이 사랑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활짝 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3항 참조). 이러한 자세는 무엇보다도 주님께 사랑받고 용서받으며 심지어 주님의 섬김을 받고 있다는 인식에서 생겨납니다. 주님께서는 몸소 몸을 굽혀 사도들의 발을 씻어 주셨고 십자가 위에 당신 자신을 바치시어 인류를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셨음을 알려 주며,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참된 진리에 대한 승리에 찬 확신을 줍니다. ……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심장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보는 믿음이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은 빛입니다. 어둠에 싸인 세상을 언제나 밝혀 주고 우리에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빛, 유일한 빛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9항).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인만의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신앙 안에 뿌리를 박고 신앙으로 형성되는 사랑”(「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7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사랑, 믿음 안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 첫 응답은, 우리보다 앞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주도권을 참으로 경이롭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예’는 주님과 이루는 빛나는 우정의 시작입니다. 이 우정은 우리의 온 삶을 가득 채우고 충만한 의미를 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거저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우리가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께 이끄시어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오로 성인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의 사랑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 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어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처럼 사랑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은 참으로 “사랑으로 행동하는”(갈라 5,6) 믿음이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게 됩니다(1요한 4,12 참조).

믿음은 진리를 깨닫고 따르는 것이며(1티모 2,4 참조), 사랑은 진리 안에서 “걸어가는” 것입니다(에페 4,15 참조).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과 우정을 맺고, 사랑을 통하여 이 우정은 생명을 얻고 자라납니다(요한 15,14 이하 참조). 믿음은 우리가 우리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분의 계명을 받아들이게 해 주고, 사랑은 우리가 이 계명을 실천하는 행복을 줍니다(요한 13,13-17 참조).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고(요한 1,12 이하 참조), 사랑으로 우리는 굳건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갈라 5,22 참조). 믿음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우리가 깨닫게 해 주고, 사랑은 그 선물이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마태 25,14-30 참조).

3. 믿음과 사랑의 불가분의 상호 관계

앞에서 살펴본 것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믿음과 사랑을 대립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떼어 놓을 수도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 두 향주덕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 사이에 대립이나 ‘변증법적인 것’을 설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한편으로, 믿음이 우선이고 결정적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사랑의 구체적인 활동을 막연한 인도주의로 폄하하면서 거의 무시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랑이 우위라는 사실과, 마치 활동이 믿음을 대신할 수나 있다는 듯이 사랑이 이끄는 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건전한 영성 생활을 위해서는 신앙주의나 도덕적 행동주의를 모두 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을 만나고자 끊임없이 산에 올라 하느님에게서 사랑과 힘을 얻고 내려와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형제자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의 믿음을 일깨우려는 사도들의 열정이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봉사하려는 사랑의 관심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사도 6,1-4 참조). 교회 안에서, 복음서의 인물인 마리아와 마르타로도 상징되는 관상과 활동은 공존하고 서로 보완해야 합니다(루카 10,38-42). 하느님과의 관계가 언제나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정신에 따라 재물을 진정으로 나누는 모든 행위는 믿음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2012년 4월 25일 일반 알현 참조). 사실 때때로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연대나 단순한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가장 위대한 행위는 ‘말씀의 봉사’인 복음화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이웃을 위한 활동 중에, 하느님 말씀의 빵을 쪼개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나누고, 하느님과 맺는 관계로 이끄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고 그래서 더 큰 사랑의 활동은 없습니다. 복음화는 가장 높고 가장 온전한 인간 증진입니다. 하느님의 종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에 쓰신 대로 그리스도의 선포는 발전의 첫째가는 중심 요소입니다(「민족들의 발전」, 16항 참조). 우리의 삶을 열어 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인류와 모든 개인의 온전한 발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우리가 실천하고 선포하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근원적인 진리입니다(「진리 안의 사랑」, 8항 참조).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을 향해 갑니다.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은 복음 선포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집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느님과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은 우리를 ‘사랑이신 분과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랑 안에 머물고 우리 안에 사랑이 자라나 기쁜 마음으로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에페소서에는 믿음과 사랑 실천의 관계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에페 2,8-10). 여기에서 구원의 주도권은 온전히 하느님과 하느님의 은총에서, 믿음을 통해 받은 하느님의 용서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도권은 우리의 자유와 책임을 전혀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그 자유와 책임을 온전하게 해 주고 사랑 실천으로 향하게 해 줍니다. 이 사랑의 실천은 먼저 자랑할 만한 인간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고, 하느님께서 풍성하게 베푸시는 은총에서 흘러나옵니다. 행동 없는 믿음은 열매 맺지 못한 나무와 같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를 내포합니다. 사순 시기에 우리는 전통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의 관습대로, 하느님 말씀에 더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고 성사를 받으며 우리의 믿음을 기르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특히 단식과 참회와 자선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키우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4. 믿음의 우선성, 사랑의 수위성

하느님의 다른 모든 선물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사랑은 한분이신 같은 성령의 활동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1코린 13장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시고(갈라 4,6), 그분에 힘입어 우리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1코린 12,3) 하며 “마라나 타!”(1코린 16,22; 묵시 22,20)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물이며 응답인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랑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명하셨으며 이웃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은 이 사랑만이 악과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굳은 확신을 우리 마음과 정신에 심어 줍니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리라는 확신에 찬 기대 속에 희망의 덕으로 미래를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한편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바로 그 하느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에 인격적으로 또 실존적으로 동참하게 해 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그분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시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자녀다운 헌신과 모든 사람에 대한 형제적 봉사를 우리가 본받도록 해 주십니다(로마 5,5 참조).

이 두 가지 덕의 관계는 교회의 근본이 되는 두 성사, 곧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관계와 닮아 있습니다. 세례성사(믿음의 성사)는 성체성사(사랑의 성사)보다 앞서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충만케 해 주는 성체성사로 나아갑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사랑보다 앞서지만, 사랑의 화관을 쓸 때 비로소 참다운 믿음이 됩니다. 모든 것은 믿음의 겸손한 수용(‘하느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사랑의 진리(‘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사랑은 모든 덕의 완성으로서 영원히 계속됩니다(1코린 13,13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사순 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고 그 빛을 역사 위에 비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경축할 준비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소중한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을 되살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의 힘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지향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주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모든 공동체에 강복하여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바티칸에서
2012년 10월 15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원문: Pope Benedict XVI, Message for Lent 2013 “Believing in charity calls forth charity”, ‘We have come to know and to believe in the love God has for us’ (1Jn 4,16),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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