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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담화] 2012년 제17회 농민주일 담화문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12-07-11 조회수 : 1836

제17회 농민주일 담화
(2012년 7월 15일)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천하의 근본이라 일컫는 농사(農事)의 주재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당신 창조질서의 관리자로 “땅을 다스리도록”(창세 1,28) 복(福)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땅을 일구고 가꾸며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고 창조 질서를 배우며 일용할 양식을 얻습니다. 농민주일은 이렇듯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의 돌봄과 축복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 자연 재화는 오늘날 점점 더 심각한 불균형 상태를 겪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사목헌장 69항)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국가 간의 식량과 에너지의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한 나라에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도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농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6% 수준이고, 농가 소득은 도시 근로자 가구 소득의 65% 수준에 불과합니다.

   올해 3월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나라의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멕시코의 경우 외형적 수출 규모와 외환 보유고는 증가하였지만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활은 악화되었고 결국 심각한 양극화(兩極化) 현상과 이농(離農)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2008년 2월 멕시코 주교단은 NAFTA에 대한 성명에서 세상에 죽음을 가져오는 잘못된 제도의 개선,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 대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적극적인 헌신, 그리고 농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복리 증진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세계 1위 시장 규모인 미국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하고 있지만, 같은 논리로 시작한 멕시코의 경우처럼 한ㆍ미 FTA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이미 무너진 우리 농민과 농촌 공동체를 더욱 질식시키고, 도시 월급 생활자들의 삶을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재화는 모든 이가 ‘충만한 자기 발전’을 이루기 위해 공평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권리를 가르칩니다. 이 권리는 ‘인간의 본성에 새겨져 있는 자연권’이자 ‘천부의 권리’이고 따라서 ‘모든 경제 사회적 체계나 수단에 우선하는 권리’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72항 참조).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농민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성을 해칠 심각한 우려가 있는 한·미 FTA는 지금이라도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공동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재고되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한편 우리 교회는 그동안 농부이신 하느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농민들과 농업, 농촌 공동체를 위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이 운동이야말로 도시와 농촌 공동체가 만나 서로의 삶과 문화, 먹을거리와 재화를 나누고 서로를 섬기는 생명 운동이요, 공동체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본당 신앙 공동체는 초대교회처럼 형제자매로 서로 만나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친교를 맺고,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사도 2,46 참조). 나날이 심각해지는 물질·소비 문명, 생명 경시와 개인주의의 거센 흐름을 거슬러, 도시와 농촌의 교회 공동체는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인간다움과 공동체다움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의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삶의 외적 편리함과 물질적 소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오늘날 세상 속에서 우리는 농부이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선택합시다. 농민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가 묵묵히 땅을 일구며 매일 매일을 생명과 노동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배우기로 다짐합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농민들과 농촌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농부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은총이 항상 농민들과 도시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풍성하게 머물기를 기도드립니다.

2012년 7월 15일 농민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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