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느님의 동산을 일구며 돌보는 협력자들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창조하시고, 특히 당신 모습 닮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우리에게 땅을 일구고 온갖 생명을 돌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께로부터 자연만물에 대한 ‘섬김’과 ‘배려’라는 통치 위탁을 받은 일꾼이요, 협력자(cooperator Dei)로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창세 2,15 참조) 하느님의 창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협력자로 자연을 돌보아야 하고, 자연을 파괴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땅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한다면 하느님과 맺은 창조의 협력 관계도 깨어지고, 자연은 인류와 세상에 엄청난 재앙을 되돌려 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생태계 파괴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주신 협력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의 고유한 선(善)을 존중해야 하고 창조주를 무시하는 일이나,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39항)
오늘날 에너지 과소비로 전 지구적 차원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산화탄소 전체 배출량의 80%가 단지 19개 국가로부터 발생된다는 점입니다. 또 현재 70억 인구가 사는 지구 인구수는 2050년에는 90억 명을 넘어설 예정입니다. 이 같은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맞추어 농작물의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비료사용 비중이 심각하게 높아져 땅은 산성화되어 병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35년 동안 매년 남산의 약 17배에 달하는 산림(山林)이 없어졌고, 전 세계 5위 규모의 서해안 갯벌은 간척사업 공사로 지난 45년 동안 36%의 갯벌이 사라졌습니다. 맑은 물과 공기를 공급하는 강과 갯벌의 정화기능이 사라진 것입니다. 또 인위적인 강(江) 정비 및 개발 공사인 4대강 사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우리와 다음 세대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고 불안한 앞날을 예고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인간은 자연의 그 무한한 보화와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지상 실존의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교황 요한바오로 2세 교서,「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14항)라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생태 주보이신 프란치스코 성인은 땔감을 마련하는 형제들에게 나무를 온전히 자르지 말고 한쪽만 잘라 다른 쪽은 살 수 있도록 배려하도록 했습니다. 또 밭일을 하는 형제에게 밭 둘레는 가꾸지 말고 그냥 두라고 일러, 때가 되면 초록빛 풀잎과 예쁜 꽃들이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우리에게 동산을 돌보고 보전하는 ‘녹색 돌봄’을 이미 우리에게 소명(召命)으로 주셨습니다. 그 모습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처럼 한 그루의 나무를 배려하고 만물을 돌보는 모습입니다. 특히 지난 해 동일본 후쿠시마 대지진과 이로 인한 핵발전소 참사 이후 독일과 스위스 등 선진국들은 죽음의 에너지인 핵에너지 정책을 폐기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에너지인 태양열, 풍력, 지열, 바이오가스와 같은 재생 에너지 중심의 녹색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생태 문명적 전환 시점에 유독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도 핵에너지를 고집하고 핵발전소 확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 공동체가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초록 문명(文明), 즉 모든 창조물을 돌보고 배려하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점차적으로 모든 가정과 공공기관 건물에 태양 에너지 시스템을 마련하고, 구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다양한 노력들을 전개합시다. 또 우리 사회에서 개발과 물질적 가치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핵에너지 확대 정책을 반대하며 자연 생태계를 돌보는 생명의 가치를 널리 알려야만 합니다. 신앙인 개개인은 일상생활에서 전기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지구 생태계를 위해 화려한 것으로 치장된 불필요한 수단과 방법들을 지양하고, 스스로 청빈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의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한 책임과 실천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한데 모일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세상은 ‘보시니 참 좋은’(창세 1,10) 세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요, 자매인 지구 생태계의 희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12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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