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친교’인 봉헌생활
예수님의 봉헌축일을 맞이하며 교회는 또 다시 봉헌생활의 날을 기념합니다. 기쁨으로 이날을 기념하면서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로 인해 안타깝고 걱정스런 마음 또한 금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아름다운 창조물인 자연과 인간이 지닌 진정한 가치와 의미에 대한 물음마저도 코앞에 놓인 당장의 작은 이익에 가려진채 경제적인 논리와 힘의 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현실이 너무 막막합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자연과 인간의, 인간과 인간의,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참 만남의 부재, 즉 친교의 부재입니다. 인간은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할 자연을 멋대로 훼손하고 파괴하며, 사랑해야 할 상대인 인간을 쾌락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켜 도무지 인간이 지닌 가치와 존엄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모든 것 안에 항상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 뵙고 친교를 나눔은 아예 대화의 주제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든 생명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더욱 키우시는 하느님과 친교가 과연 가능하겠는지요. 하여 우리가 기념하는 봉헌생활이 오늘날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봅니다.
봉헌생활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신원의식’, 부르심에 대한 ‘확신’, 그리고 형제적 공동체의 삶과 사명수행을 통한 부르심의 구체적 ‘증거’입니다. 이 세 요소들은 부르시는 스승과 불린 제자의 관계, 그리고 제자의 삶을 통해서 맺어지는 스승과 다른 이들의 관계를 잘 드러냅니다. 제자와 스승의 참된 관계는 제자가 우선 자기를 부르고 사랑하는 스승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신원의식), 그를 믿고(부르심에 대한 확신) 사랑할 때(삶과 사명을 통한 부르심의 구체적 증거) 이루어집니다. 스승의 존재를 제대로 알 때 제자는 스승을 닮아 그와 같아지려는 열망을 품고, 또한 그것이 자신이 추구할 삶의 유일한 가치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확신이 제자로 하여금 스승과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고, 또한 스승의 존재와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끔 합니다. 그리하여 스승은 이제 제자의 일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집니다. 스승과 제자의 친교는 다른 이를 초대해서 더욱 커지고 새로워진 공동체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봉헌생활은 바로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부르시는 스승이신 하느님과 제자인 수도자들이 맺는 이러한 친교의 열매인 형제적 공동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을 선물로 전하는 삶이 바로 봉헌생활입니다. 수도자들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과 사랑을 철저히 누리고 살아가며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루었던 공동체를 다시금 이 세상에 드러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드러냅니다. 이처럼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옮기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봉헌생활입니다. 수도자들은 바로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친교’를 살아갑니다.
봉헌생활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이으며 하느님과 사람을 잇는 친교인 봉헌생활은 오늘과 같은 친교의 부재의 시대에도 친교를 희망하고 누리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한 그 친교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봉헌생활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교회와 세상에 주신 아주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봉헌생활 1 참조).
다양한 모습으로 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공동체처럼 우리가 나누는 소중한 친교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의 진정한 친교인 하느님 나라가 가능함을 조용하지만 아주 분명하게 외칩시다. 그리하여 교회와 세상에, 특히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고 우리가 일구는 친교의 공동체와 함께하도록 그들을 초대합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형자매와 교회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의 참된 친교를 통해 이 세상에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인 하느님 나라가 더욱 커지도록 봉헌생활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이해, 기도와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을 창조하시고 더욱 아름답게 키우시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더욱 풍요롭게 누려봅시다.
2011 년 2월 2일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살레시오회 남 상 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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