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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22차 청소년 주일 담화

작성자 : 수원교구 작성일 : 2007-05-22 조회수 : 156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각 교구 별로 거행될 올해 제22차 청소년 주일을 맞아, 저는 여러분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가능한가?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우며, 또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를 고려해야 합니까? 과연 사랑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들까지도 있습니다. 감정적 실망이나 애정의 부족 때문에 사랑은 환상이고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단념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능합니다. 저는 이 담화를 통하여 인류의 미래이며 희망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참되고 성실하고 강하며, 평화와 기쁨을 낳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자유로움을 느끼도록 하는 사랑에 대한 확신을 다시 일깨워 주고자 합니다. 이제 저와 함께 사랑의 ‘발견’을 향한 세 단계의 여정을 시작해 봅시다.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
  첫 단계는 참 사랑의 원천에 관한 것입니다. 그 원천은 오로지 하나, 하느님뿐이십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라고 선언할 때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의 원천을 가장 눈부시게 드러내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마주하게 됩니다. 한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 안에서 성부와 성자의 위격은 서로 쉬지 않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이 사랑은 어떤 힘이나 감정이 아니라 또 다른 위격, 곧 성령이십니다.

 

  하느님 사랑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이제 우리 여정의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표징들이 이미 피조물 안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하느님의 내밀한 신비는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신 강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장 온전하게 계시되었습니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말씀드렸듯이, “신약 성경의 실질적인 새로움은 새로운 개념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러한 개념들에 살과 피를 부여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의 모습에 있습니다”(12항). 하느님 사랑은 십자가에서 전적이고 완전하게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십자가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신”(로마 5,8 참조)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각자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놓으셨다.”(에페 5,2 참조)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인간이기에 그 어떤 인간 생명도 쓸모없거나 덜 귀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열렬하고 한결같은 사랑, 가없는 사랑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친히 사랑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음이요 많은 믿는 이들에게는 분개할 일인 십자가는 사실, 자신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십자가를 만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5). 더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다음 그분의 수난 흔적을 영원히 지니게 된 수난의 십자가는 폭력과 보복과 배척의 근저에 놓인 하느님에 대한 ‘왜곡’과 거짓말들을 폭로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인류의 마음에서 증오를 없애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참된 ‘혁명’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제 우리 성찰의 세 번째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목마르다”(요한 19,28) 하고 외치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으신 그분의 뜨거운 갈망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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