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마태 9, 3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순 시기는 자비의 샘이신 주님께 나아가는 내적 순례를 위한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 순례 동안 주님께서 친히 가난하고 메마른 우리 마음에 함께 하시며, 부활의 강렬한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시편 저자가 말하는 “어둠의 골짜기”(시편 23,4)에서 악마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거나 우리가 하는 일에 헛된 희망을 안겨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기쁨과 평화와 사랑을 갈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어른, 노인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 불행과 외로움, 폭력과 굶주림의 비참함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어둠이 세력을 떨치도록 두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저의 선임자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셨듯이, “악에는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한계”가 있으니, 그것은 곧 자비입니다(Memory and Identity, 19면 이하). 저는 이러한 생각을 염두에 두고 올해 사순 시기 담화의 주제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라는 복음 말씀을 골랐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오늘날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주제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발전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연민의 ‘눈길’로 개인과 민족들을 계속하여 바라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시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에 그들의 구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계획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들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자 가엾은 마음이 드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서라도 늑대들에게서 양떼를 지키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개인과 군중을 감싸고 당신 자신을 속죄의 희생 제물로 봉헌하시어 그들을 모두 하느님 아버지 앞에 데려다 주십니다.
이러한 파스카의 진리로 밝혀진 교회는 우리가 완전한 발전을 이루어 나가려면 인류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을 그리스도에 비추어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물질적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과 그들 마음의 깊은 바람을 충족시키는 일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란 어렵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더욱 분명해지고 절박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사실은 한층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선임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저개발과 같은 부끄러운 문제는 인류에 대한 모욕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 6세께서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저 보상도 받지 못하는 물질적 결핍”과 “지나친 자애심 때문에 윤리적 빈곤에 자신을 묶어놓은 사람들”, 그리고 “사유권과 권력의 남용, 노동자들의 착취, 부정한 상거래로 조성된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비난하셨습니다(21항). 그러한 악에 대한 해독제로서 바오로 6세께서는 “인권 존중, 청빈에의 노력, 공동 복지를 위한 협력, 평화의 염원”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고의 선과 그 선의 원천이요 극치이신 하느님을 인정하는 일”을 제시하셨습니다(21항). 이러한 맥락에서 바오로 6세께서는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선의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신앙”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정신적 일치”를 제안하셨습니다(21항). 따라서 군중들을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눈길’은 바오로 6세께서 “개인의 인간 전체와 전 인류의 완전한 발전”이라고 하신 “완전한 휴머니즘”의 참된 의미를 확인하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42항). 이런 까닭에, 인류와 민족들의 발전을 위한 교회의 가장 큰 공헌은 단순히 물질적 수단이나 기술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길러주시고 인간과 노동의 참된 존엄을 가르쳐 주시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문제들에 참된 응답을 줄 수 있는 문화를 증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끔찍한 빈곤의 문제 앞에서, 무관심과 이기적인 회피는 그리스도의 ‘눈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교회가 기도와 더불어 사순 시기에 특별히 제안하는 단식과 자선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눈길’에 맞출 수 있는 적절한 방법입니다. 성인들의 모범과 교회 선교 활동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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