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사랑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 상호와 세상을 일치시켜주는 연결고리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속에 살면서 동시에 이웃 형제와도 사랑의 친교를 나누며, 창조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은 반드시 이웃과 창조물에 대한 사랑을 동반하면서 나눔의 행위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을 것과 마실 것의 형상으로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성체를 받아먹음으로써 생명의 힘을 얻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나눔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2.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인간의 생명은 시들어버리고 죽어버립니다. 어린 아이들이 사랑받지 못하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성숙할 수도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눌 수 없는 노인들이 쉽게 약해지고 병들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향하여 마음을 열도록 초대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봅시다.
세계 최고 부자 3명의 재산 합계가 가난한 나라 49개국에 사는 6억 명의 연간 소득보다 더 많습니다. 50여 개 나라의 개인소득은 10년 전보다 오히려 줄었고, 60개 나라는 20년 전보다 더 가난해졌습니다. 전 세계의 재화 중에서 상위 20%의 잘 사는 나라가 86%를 소비하는 반면, 하위 20%의 가난한 나라는 단지 1.3%만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세계 식량 생산량은 인류 전체가 먹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양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의 40%는 잘사는 나라에서 가축사료로 사용되는 반면, 10억 명 이상의 사람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매일 2만 4천 명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저체중아로 태어나 매년 600만 명이 5살 이전에 숨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좋은 환경에서 살 형편이 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많은 자연재해 앞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3. 이 순간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많이 있습니다. 전쟁, 가뭄, 질병, 각종 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죽어가거나 방황하는 많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국제 카리타스(Caritas Internationalis)’라는 공식 구호단체를 통해서 50여 년 전부터 전 세계 201개 지역에서 사랑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162개 회원국가의 카리타스들과 상호 협력하여 재난구호나 가난한 나라의 구호, 복지, 개발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 카리타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도 이에 동참하여 지난 12년(1993-2004) 동안 382개의 사업에 약 130억 원을 지원하여 매년 평균 10억여 원을 해외의 어렵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금액을 환산해보면 한국 천주교회 400만 신자 한 분이 1년에 250원을 도와준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천 원이면 가난한 나라에서 한 가족의 하루 생활비 이상이 되고, 만 원이면 어린이 한 명이 두 끼의 음식을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고, 십만 원이면 6인 가족이 6개월 동알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살 수 있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보듯(루카 16,19-31 참조), 가난한 라자로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고 싶어 했지만, 그 한 조각도 받아먹지 못했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물질을 하느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서 사용할 때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재물을 가진 사람은 궁핍에 처한 형제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궁핍한 형제를 외면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찾고 그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라겠습니까?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 4,20).
지난해에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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