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군인주일 담화문
오늘은 조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육,해,공군 장병들을 기억하며 또 이들을 돌보고 있는 군종사제들의 사목활동을 위해 아낌없는 기도와 후원을 보내는 군인주일입니다. 그렇습니다. 1968년 추계 주교회의에서 10월 첫째주일을 군인주일로 제정한 이래로 올해가 서른 일곱 번째를 맞이합니다.
그 동안 군 사목을 위하여 기도해주시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군인들과 또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군종사제들과 함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군인들에게 있어 이 세상 순례의 목적은 바로 평화에 대한 봉사!
새천년기를 시작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2세께서는 전 세계 주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2000주년을 경축하는 대희년 행사를 마치고 나서의 느낌을 교서로 발표 하셨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교황께서는 다양한 순례자들을 만나셨고 그 중에 군인들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성인들의 자취를 따르려는 것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회의 자녀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죄를 고백하며 구원의 자비를 얻고자 로마로, 사도들의 무덤으로 물밀 듯이 몰려 왔습니다 … 그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기쁨과 근심과 고통으로 이루어진 그들 각자의 인생 역정을 그려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복무 의미를 평화에 대한 봉사로 확인하러 온 군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끝없이 밀려오는 순례자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그들에게 순례하는 교회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새천년기, 8-10항).”
그렇습니다. 구세주 강생 2000년을 넘어서는 새로운 천년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위협과 발발에서 넘쳐나는 극심한 고통과 곤경 가운데에 있으며 인류 공동체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교회는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히브13,20) 주님의 인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순례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순례하는 백성 중에는 “평화에 대한 봉사”를 자신들의 존재이유로 받아들여야 하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평화란 무엇입니까? 평화는 전쟁 없는 상태만은 아닙니다. 적대세력 간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고 또 힘 있는 나라에 의한 지배도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이 만드신 “정의의 작품”(이사32,17 참조)이기에 우리 모두가 행동으로 실천하여할 사회 질서의 열매가 바로 평화입니다(사목헌장 78항).
그러기에 “평화에 대한 봉사”에 몸 바쳐 군대 생활을 하는 사람들, 즉 군인들은 자신을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는 역군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 임무를 올바로 수행할 때에 그들은 참으로 평화 정착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사목헌장79항).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5,9).
최근 들어와 정치현실은 남북관계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아 갑작스레 북한과 북한군을 바라다보는 시선을 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화해와 친밀함과 우호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를 위해서는 북한군에 대한 대립과 적대감을 없애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우리에게만 이런저런 요구만 늘어놓는 북한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지키는 평화의 파수군인 장병들의 눈동자와 마음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순간도 외로운 바다 위에서, 넓은 하늘에서, 북녘이 바라다 보이는 최전방에서 국토방위를 위해 젊음을 불태우는 많은 장병들에게도 주님의 평화와 축복을 간구합니다.
또 지난 8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평화정착과 재건의 사명을 띠고 장도(壯途)에 올랐습니다. 3600명의 장병들과 2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이번 파병은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남북 대립의 현실 속에서 북한의 핵문제로 한반도가 처한 불안한 입장은 그 향방을 가눔 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미동맹을 통한 국익을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