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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우물이 희망인 이 곳, 남수단에서 희망을 퍼올리다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10 조회수 : 479

가톨릭평화신문 기획특집 _ [선교지에서 온 편지] 남수단에서 손명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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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리우 공소 미사 후 신자들과 친구처럼 한 컷. 손명준 신부 제공


 



찬미 예수님! 남수단에서 ‘피데이 도눔’(Fidei Donum) 사제로 파견되어 룸벡교구에서 선교하며 살고 있는 수원교구 소속 손명준 마르코 신부입니다. 저는 아강그리알과 쉐벳 공동체의 주임을 맡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수단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인어뿌알!

매일 아침 7시에 봉헌되는 미사를 위해 사제관에서 나섭니다. 경당 옆에 있는 작은 수돗가에 아이들이 줄을 서서 물을 퍼갑니다. “굿모닝! 인어뿌알!(안녕하세요!)” 미사를 집전하러 가는 저를 보며 아이들이 수줍은 미소로 인사해줍니다. 미사에 들어가기 전 손과 발을 씻는 아이들, 학교 가기 전 잠시 수돗가에 들러 세수하는 학생들, 오늘 하루 성당 직원들을 위해 밥을 짓기 위해 물을 뜨고 있는 요리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수로 근처에는 닭들이 물을 먹습니다. 매일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저도 인사합니다. “인어뿌알!”



아부나! 도와주세요!

아침 미사가 끝나면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직원들과 시작기도를 하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줍니다. 저도 설거지하고 빨래도 돌리고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노라면 성당의 매니저가 저를 찾아와 알려줍니다. “신부님, 누가 신부님께 도움을 청하려고 왔어요.”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중에서도 저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입니다. 남편은 이미 죽고, 아내는 과부가 되어 4~5명의 아이를 먹이고 키워야 하는데 돈도 없고 음식도 없어서 벌써 며칠째 굶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병에 걸려 몸이 아픈데, 약을 사 먹을 돈이 없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학교에 가야 하는데 교복도 없고 학비를 낼 돈이 없어서 찾아옵니다. 처음엔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아프고 힘들다는데 왜 도와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매니저와 그 사람들과 같이 앉아 한참 그들의 딱한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비록 모든 사람들을 다 도와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미사의 지향이 정해집니다. 참 가난하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 바로 여기 아강그리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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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욕 공소 유아세례 후 사탕 선물받은 아이들


아부나! 우물이 고장 났어요!

아강그리알에서 차로 15분 정도에 말로우욜이라는 작은 공소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유아 세례와 첫영성체 예식이 있어 미사를 봉헌하러 왔습니다. 4명의 아이가 세례를 받고, 다섯 명의 친구들이 첫영성체를 모십니다. 비록 우기 중이라 본당까지 왔다 가는 길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친구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미사가 끝나면 공소에서는 신부님을 위해 점심밥을 내어줍니다. 아무리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남수단 현지음식. 메뉴는 단출하기 그지없지만, 이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정성을 생각하며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웁니다. 밥을 다 먹으니 공소의 교리교사가 저에게 한 가지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신부님, 공소 옆에 있는 우물이 고장 났어요.” “어쩌다가 고장이 났어요?”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펌프 부품이 부러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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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강그리알에서 우물을 퍼올리는 시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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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얏 지역에 설치된 우물에서 물을 뜨는 아이들.

우물이 필요한 사람들

여기 남수단에 와서 차를 타고 길을 지날 때마다 심심치 않게 우물이 보입니다. 쉐벳에서 아강그리알로 이어지는 길에도 벌써 우물이 서너 개가 있습니다. 공소에 설치된 우물, 길가에 설치된 우물 주위에는 항상 아이들이 열심히 펌프질을 해댑니다. 130~140㎝ 정도 되는 작은 아이들이 노란 물통에 가득 찬 물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놀랍습니다. 힘차게 물동이를 든 어린아이는 집을 향해 맨발로 걸어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집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낙후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20~30㎞ 정도를 걸어 다닙니다. 교통수단으로 사용할 마땅한 자동차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아찔한 거리의 길을 걸어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 거리 안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직도 오지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없어 많은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갈증을 때로는 비가 해결해 줄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정화시설조차 없는 이들에게 땅에 고인 웅덩이나 강에 흐르는 물은 오히려 그들을 병들게 합니다.

제대로 포장된 도로가 없어서 자동차들은 길거리에 파인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물을 첨벙첨벙하면서 위태롭게 달립니다. 자동차가 들어갔던 그 물이 깨끗할 리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물을 구할 길이 없는 사람들은 그 물을 가져다가 빨래를 하고 소를 먹이기도 하고, 씻는 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생명의 우물 파기 프로젝트

남수단 하면 누구나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님을 떠올립니다. 저희 수원교구 신부들이 파견된 이곳 아강그리알과 쉐벳은 그 톤즈에서도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오지에 있습니다. 2008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아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온 수원교구의 신부님들은 이곳 사람들에겐 큰 선물입니다.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에게 생명의 우물을 파주기 위해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먼저 성당이 있는 지역과 그 성당 공소 지역들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후보지를 선정하고, 그곳에 우물을 만들어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물 후보지가 선정되면 커다란 장비들이 도착합니다. 매일 지루한 일상을 지내던 아이들이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겨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 마을의 촌장 어르신들부터 성인 남녀 할 것 없이 마을에 사는 모두가 긴장된 마음으로 땅을 파는 시추 기계를 바라봅니다. 이윽고 물이 터져 나옵니다! “와~!” 모여 있던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드디어 이 마을에도 생명의 우물이 만들어졌습니다.



희망을 살아가는 사람들

수원교구는 이곳 룸벡교구에 총 58개의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각 우물에는 기증해주신 분들의 이름과 세례명이 적혀있습니다. 이 우물들은 이들에게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살아갈 희망, 물을 긷기 위해 먼 거리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오지에 있는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주었지만, 그들에게는 우물을 기증해 주신 분들의 이름이 더 많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우물이 이들에게는 큰 희망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인샬레이츠!”(고맙습니다!) 작은 손으로 힘차게 펌프질을 하는 아이들이 오늘도 고마운 마음으로 희망을 퍼 나르고 있습니다.



후원 계좌 : 신협 131-002-040468

예금주 : (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손명준 신부 / 수원교구 / 남수단 룸벡교구 아강그리알본당ㆍ쉐벳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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