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이주민들과 함께 천진암성지로 떠난 성지순례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광주본당 주임 류덕현 신부(가운데)와 광주 엠마우스 담당 마우리찌오 신부(왼쪽에서 세 번째).마우리찌오 신부 제공
제2대리구 광주본당(주임 류덕현 알베르토 신부) 성당 출입문 옆에는 ‘수원교구 제2대리구 광주성당 미사 시간 안내’ 간판이 서 있다. 평일미사와 주일미사 시간은 여느 본당과 별 차이가 없지만, 눈에 띄는 미사가 하나 있다. ‘주일 오후 1시30분 이주민 미사’다.
광주본당에서는 주일 오후 1시30분 경기도 광주 일대에 거주하는 이주민 100여 명이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주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광주 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를 담당하는 이청우 마우리찌오 신부(오블라띠 선교수도회)가 주례한다.
광주본당에서 약 1㎞ 거리에는 광주 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다. 마우리찌오 신부는 “광주본당은 이주민들에게 너무나 고마운 곳”이라고 말하곤 한다. 광주 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와 광주본당은 20년 가까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다.
광주 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와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광주본당 전경.사진 박지순 기자
지난 4월 광주성당에서 거행된 이주민 세례식 후 기념사진.마우리찌오 신부 제공
■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참조)
마우리찌오 신부는 광주 일대 이주민들을 ‘하느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내려 주시는 비’ 같은 존재로 대하며 사목하고 있다. 한국인과 이주민 사이에 구분이나 차별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동등한 사람일 뿐이다.
마우리찌오 신부는 자신의 한국 이름 ‘이청우’(伊淸雨)에 담긴 뜻 그대로 사제생활을 하고 있다. 1963년 이탈리아 시칠리섬에서 태어난 마우리찌오 신부는 로마 라테라노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91년 사제품을 받은 뒤 1993년 한국에 왔다. 올해 환갑이면서, 한국에서 사제생활을 한 지 꼭 30년이 됐다.
신학생 시절 지도신부는 마우리찌오 신부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비’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별명 같은 존재가 되라는 뜻이었다.
사제생활 32년 중 30년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마우리찌오 신부는 신학교 지도신부가 지어 준 별명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국 이름을 ‘이탈리아에서 온 맑은 비’라는 뜻으로 이청우라고 정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내리는 맑은 비는 마우리찌오 신부가 2005년부터 펼치고 있는 광주 이주사목의 모습을 더없이 정확히 표현해 준다.
광주성당에서 열리고 있는 이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소.마우리찌오 신부 제공
■ 왜 광주 엠마우스인가
광주본당 인근 2층 주택에 자리한 광주 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 출입문에는 A4용지 크기에 ‘Emmaus Migrant’s Community 이주민 공동체’라는 영어와 한글 이름이 붙어 있다. 공동체 이름을 붙여 놓지 않았다면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주택이다.
마우리찌오 신부는 2005년부터 광주 지역에서 이주민 사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주본당 내 작은 집무실에서 매주 토요일과 주일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면담하고, 외국인 공동체를 위해 매 주일 영어 미사를 봉헌했다. 외국인 공동체가 점점 커지면서, 본당 교육관을 빌려 한국어 교육도 시작했다. 2007년 5월 광주본당에서 가까운 가정집 2층에 이주민 공동체 사무실을 마련했다. 한 달에 한 번 의료진들이 방문해 무료로 이주민들을 치료하는 활동도 이때 시작됐다.
광주 지역 이주민 공동체에 ‘광주 엠마우스’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2007년 6월 9일 당시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이주민 공동체를 찾아 축복식을 주례하면서부터다. 엠마우스로 가던 제자들은 희망과 기대가 무너져 실망에 빠져 있었지만, 예수님을 다시 만남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됐다. 한국에 찾아온 이주민들의 상황이 엠마우스로 가던 제자들과 똑같다는 생각에서 광주 지역 이주민 공동체 이름이 ‘광주 엠마우스’가 된 것이다.
광주 엠마우스 탄생에는 마우리찌오 신부의 헌신만큼이나 광주본당 역대 주임신부들의 협력과 이주민 사목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이 됐다. 마우리찌오 신부는 “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광주본당 현 주임인 류덕현 신부도 “마우리찌오 신부님이 이주민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하신다는 이야기를 이전부터 들어 왔다”며 “광주본당 신자들은 이주민들의 신앙 활동을 보면서 그들을 본당 공동체의 똑같은 식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로 광주 지역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간혹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경우도 있다”며 “그럴 때면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기도 하지만, 이주민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광주본당 신자들 모습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광주 엠마우스라는 명칭에는 이주민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 지역 본당과 이주민 공동체의 협력, 서로에 대한 이해가 모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우리찌오 신부는 “이주민 사목을 하면서 나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고, 해결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합쳐져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말했다.
■ 아름다운 동행
마우리찌오 신부는 광주본당 주일 오전 9시 미사를 매주 주례한다. 주일 오전 9시 미사에 참례하는 광주본당 한국인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이주민 사목에 관심과 후원을 보내고 있다. 주일 오후 1시30분 이주민 신자들을 위한 영어 미사에는 한국인 신자들도 함께 미사를 드린다.
이뿐 아니라 본당 행사나 성지순례에도 이주민들은 함께 어우러진다. 여름 캠프와 같은 이주민들의 행사에는 본당 신자들이 봉사자로 참여해 부족한 일손을 돕는다. 이주민 신자 중 긴급하게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광주본당이 발 벗고 나서 돕는다. 최근에는 미숙아로 태어난 이주민 자녀를 광주본당과 이웃 본당에서 경제적으로 도운 일이 있었다. 그 아이는 만 두 살이 된 현재까지 아무런 탈 없이 잘 성장하고 있다.
마우리찌오 신부는 이주민 사목에 대해 “한국교회가 외국에 선교사를 보내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한국에 찾아온 이주민들을 환대하고 그들을 하느님 자녀로 대하는 활동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내 이주민 사목은 한국교회를 성숙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고 덧붙였다. “광주 엠마우스를 상담실이나 사무실이 아니라 고향집이나 내 가정 같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한 마우리찌오 신부는 “아직도 한국 사회 안에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주민사목을 위해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광주본당 주임 류덕현 신부(왼쪽)와 광주 엠마우스 담당 마우리찌오 신부.사진 박지순 기자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