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신약 곳곳에서 ‘함께 가는 공동체’ 모습 찾을 수 있어
성경에 잘 드러나는 시노달리타스
하느님, 백성을 공동체로 창조
가족·이웃 맥락에서 이야기 진행
‘함께 가는 공동체’가 교회 본질
신약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서로 통한다. 구약성경에서 드러난 공동합의성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시며 주님으로서, 당신의 케리그마를 통하여, 그리고 당신의 삶과 인격을 통하여’ 이끄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결코 혼자 행하지 않으시며,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이상 15항)
예수님 스스로가 순례자이셨고 제자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활동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면서 예수님께 배웠고, 그 길에서 삶과 행동의 방식을 복음적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실제로 예수님 스스로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세례와 성찬은 이런 공동합의성의 가장 빛나는 상징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함께 가는 길에 들어섰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에서 백성이 함께 가는 길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는지 가장 잘 드러난다. 성찬식을 통해 우리는 함께 가는 길의 궁극적 지향을 확인한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의 힘을 받게 되었고 신적 권위도 갖추게 되었다.(17항)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다양한 영적 선물과 은사들을 보내주셨다.(18항) 사도들은 이런 성령의 힘과 영적 선물을 통하여 질서를 갖췄다.
성경은 이른바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장, 갈라 2장)를 보도한다. 이 공의회는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교회 안에서 거행된 시노드들의 원형적 모습으로” 해석된다.(20항)
교부들과 고대 교회의 공동합의성
성경에 드러난 공동합의성 신학을 교부들이 전승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동합의성은 처음부터 교회의 사도적 기원과 보편적 소명에 대한 창조적 충실성의 보증이며 구현으로서 전개” 되었다.(24항)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여정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됐다. 이미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다양한 지역 교회들이 “여정의 동반자”(25항)라고 성찰했다.
325년 첫 번째 보편 공의회인 니케아공의회에서는 보편교회의 권위 행사를 위해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그것은 ‘여러 교회 수장들의 조화, 로마 주교의 협력, 다른 총대주교들의 동의, 이전 공의회와의 일치’ (29항) 등이다.
이후 교회는 새로운 상황과 맥락에 처하며 새로운 주제를 성찰하게 됐다. 개신교 종교개혁과 그로 말미암은 트리엔트 공의회는 공동합의성의 발전에 큰 계기가 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며 교회는 공동합의성에 대한 관습과 성찰을 발전시켰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아조르나멘토’라는 전망 안에서 수 세기에 걸친 관습과 실천을 통합시켰다.
공동합의성의 이해
공동합의적으로 운영되는 교회란 어떤 ‘팀’(team)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응급 의료팀’(야전병원), ‘사려 깊은 순례단’, ‘(영적)스포츠팀’ 등에 가까울 것 같다. 이 조직들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여정’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공동 목표에 참여해야만 한다. 또 지도자가 분명한 역할을 하며 모든 구성원과 소통해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조직은 공동합의성을 실현하는 교회와 유사하다. 공동합의성을 실현하는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공통적ㆍ개별적 직무에 충실하며, 복음적 목표를 향하여 역사와 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기쁘게 실현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합의성은 교계제도를 약화하거나 변형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라는 신분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한 책임성, 공동의 의무, 공동의 실천, 친교, 일치 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그 점에서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을 정통으로 계승하며,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질서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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