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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강좌 지상 중계-‘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1)시노달리타스란 무엇인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0-26 조회수 : 1285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 하나되어 이뤄가는 친교와 참여·사명의 장


‘시노드’에서 ‘시노달리타스’ 유래
‘함께(Syn) 길(Hodos)을 걷는다’는 뜻
‘시노드적 성격’ 정도로 직역 가능

주교단 회의를 의미했던 ‘시노드’
합의 이뤘던 주교단 문화 그대로
모든 신자 참여해 교회쇄신 하자는 것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가 한국교회를 비롯한 개별 교회 단계를 마무리하고 대륙별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교회 내에서도 관련된 신학적 논의가 다양하게 시도되는 가운데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 최영균 시몬 신부)가 지난 10월 11일부터 ‘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주제 강좌에 들어갔다. 12월 13일까지 매주 화요일 마련되는 강좌는 시노달리타스의 실천적 측면을 조명하고 시노달리타스와 관련된 주제 요소들이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어떤 맥락으로 쟁점화될 수 있는지, 또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정신이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 어떤 긍정적 의미와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한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강의 내용을 요약해 10주에 걸쳐 소개한다.



■ 강연 - 최영균 시몬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시노달리타스의 출현 배경

최근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시노달리타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일선 본당 교우들은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대부분 없다. 이 강좌 서두에서는 시노달리타스 혹은 시노드라는 용어 유례와 왜 오늘날 이 용어가 유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과 목적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 시노달리타스라는 말은 라틴어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사용된 신조어라고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10월 17일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이후 ‘공동합의성’ 혹은 ‘시노달리타스’ 개념은 유행이 되어, 개념의 인플레이션이 된 듯 교회 안에서 크게 유행되고 있다.

시노달리타스는 시노드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그리스어 어원은 ‘함께’(Syn) ‘길’(Hodos)을 걷는다는 의미다. 거칠게 말하면 시노달리타스는 ‘시노드성’ 혹은 ‘시노드적 성격’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시노드는 원래 교회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와 관련해 해당 주교들이 모여 결정하는 회의를 의미한다. 세속사회처럼 몇몇 힘 있는 사람들이나 세력에 의해 의사결정의 방향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전통적 권위는 인정하지만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모든 주교가 주님의 제자들이라는 공통된 연대 의식에서 친교를 이루며, 교회와 관련된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이익과 신념이 아니라 교회 전통과 하느님 신앙 계시를 기준으로 서로 경청하며 일치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 바로 시노드의 문화전통이다.

결국 주교단의 회의인 시노드 정신과 문화가 주교 수준을 넘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로 확산하여야 한다는 교회쇄신 운동이 바로 시노달리타스 운동이다.


지난해 10월 10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개막미사.CNS 자료사진


시노달리타스와 민주주의

그러나 시노달리타스라는 용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성경과 교부를 비롯한 역사적 전통에 근거한 것이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관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출현했다.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성원들의 교계적 위계를 강조했으나 현대에 와서 자연법에 근거한 인간 존엄과 민주주의 공동체관이 보편화되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임을 강조하며 현대성과 대화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바뀐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대한 교회적 쇄신과 강조의 방향성이 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언뜻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 세계관과 규범을 염두에 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물론 민주주의 세계관의 교회를 향한 변화의 압박에 교회가 직면한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적 세계관이 갖는 부분적 내용들을 교회 쇄신에 참조할 수 있지만, 그 둘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시노달리타스는 민주화, 다수결의 원리, 권력이나 직무를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받는 것 등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시노달리타스는 이런 정치 이데올로기의 속성을 존중하고 고려하지만, 근원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진리와 복음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되고 완전한 것은 하느님 한 분뿐이고, 교회를 통해 그분 진리가 전승돼왔다고 믿는다. 민주주의가 가진 이상 즉 인간의 고귀함과 이타자적 의지의 형상은 교회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불완전한 사회체일 수 있지만, 교회는 하느님 영에 대한 경외와 식별을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궤적을 그려왔다. 교회는 민주주의적 세계관의 한계에 대해 오히려 도움과 영감을 줄 수 있다.

교회가 민주주의와 시노달리타스 사이에 차이를 두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민주주의의 원리는 공화주의의 원리로서, 다수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희생자 혹은 배제자 집단의 발생을 인정한다. 둘째 교회 목적은 개인과 공동체 자체의 이익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구현과 주님의 사명을 완성한다는 것에 있다.


교회쇄신의 도구인 시노달리타스 정신

한편 시노달리타스의 목적은 세상을 향한 복음적 헌신을 위한 교회쇄신에 있다. 세상을 향한 복음적 헌신과 쇄신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예컨대 교회적 시노달리타스가 민주주의 세계관에 줄 수 있는 영감은 특정 집단을 위한 가치 주관적인 한계를 넘어 참된 가치를 향한 성찰적 합의로의 초대이다. 결국 세상의 모든 민주주의적 결정은 특정 민족, 정치공동체, 집단들의 이익과 효율성을 위한 주관적 가치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또한 시노달리타스는 오늘날 개인주의의 강화와 다원주의라는 시대성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적 규율체계이기도 하다. 즉 시노달리타스는 고립된 개인의 폐쇄적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적 관심과 친교로 초대하는 것이고 다원주의가 가져오는 거짓된 문화에 대한 참된 식별로의 초대이다.

변화하는 사회의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하고, 그분의 복음을 알리고, 그 가치를 증거하고, 봉사하는 교회의 소명이 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소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 교회는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는 세상의 가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변화를 성찰하고 식별하면서 쇄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쇄신의 도구가 바로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인 것이다.

정리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2-10-30 [제331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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