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설정부터 신학교 건립까지 교구 역사와 동행
6월 26일 교황 주일은 세계 주교단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인 교황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신자들의 충성과 일치를 다짐하는 날이다. 제1대 사도 베드로부터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는 시간은 곧 교회의 역사다. 신앙인들이 이날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황 주일을 맞아 수원교구 역사 안에서 기억할 수 있는 교황들을 찾아본다.
■ 성 바오로 6세 교황
“그러므로 포교성성이 서울대교구에서 다른 하나의 새 주교좌를 세워야 할 것으로 여긴 바를 즐거이 승인하고 (중략) 서울대교구에서 경기도 내에 있는 수원시와 부천군, 시흥군, 화성군, 평택군, 광주군, 용인군, 안성군, 이천군, 양평군, 여주군을 포함한 지역을 분리하여 한 교구를 설정하며 이를 ‘수원교구’라 명명하고, 한국 본방인 성직자들에게 위탁하노라.”
교구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1963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발표한 칙서 「최고 목자」(Summi Pastoris)를 통해 서울대교구로부터 분리돼 설정됐다. 교황은 또 당시 윤공희 신부를 초대교구장으로 임명했으며, 주교좌는 수원시에 위치한 고등동성당에 두도록 했다.
이처럼 교구를 독립시킨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3년 선출돼 성 요한 23세 교황의 후계자로서 교회를 근본적으로 쇄신했다. 전환기 교황으로서, 가톨릭교회 현대화를 주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성공적으로 종결했으며 특별히 전례 개혁과 종교 간 대화 실천은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1969년 당시 김수환 대주교를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임명한 교황이기도 하다. 2018년 시성됐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1984년 시성식 거행,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참석으로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5월 첫 방한 때 한국교회 200주년 기념 신학교로서, 수원가톨릭대학교(이하 수원가대) 머릿돌을 축복한 인연이 있다.
1980년대 들어 신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다양한 선교적·사목적 과제에 직면했던 한국교회는 1982년 춘계 주교회의를 통해 서울관구에서 신학대학 신설을 의결했다. 수원교구는 그 추진을 위임받아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 및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 기념사업으로 한국교회 네 번째 대신학교 건립을 결정, 교황 방한 때인 1984년 개교하기로 했다. 이후 수원가대는 1983년 4월 7일 기공식을 했고, 이듬해 52명 신학생으로 문을 열었다. 1990년 첫 사제 11명을 탄생시킨 수원가대는 현재 개교 38주년을 맞으며 명실공히 한국교회 사제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8년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으로 선출돼 1979년부터 2004년까지 총 104번의 사목방문을 펼치는 등 ‘평화의 사도’, ‘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렸다. 정치 사회 관련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앞장서며 공산주의 붕괴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인간 생명의 가치와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운 것도 중요한 업적이다.
2005년 선종 후 6년 만인 2011년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르게 시복됐고 2014년 시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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