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은 동성 결합 자체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동성 결합의 형태를 사는 이들도 ‘축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선언으로 인해 혼인과 성에 대한 교회의 전통 교리와 가르침이 변화되거나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12월 18일 ‘축복의 사목적 의미에 대하여’를 부제로 발표한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에 관한 설명문을 20일 가톨릭신문 등 교계 기자단에 배포했다. 주교회의 홍보국장 민범식(안토니오) 신부 명의 설명문은 “기사 혹은 기사의 제목만 접하고 ‘가톨릭교회가 동성 결합을 합법인 것으로 인정한 것인가?’라는 오해와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설명문을 배포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설명문 요약.
2022년 12월 5일 미국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성소수자 권리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서 있는 한 여성. 주교회의는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선언 「간청하는 믿음」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문을 배포했다.CNS 자료사진
■ 선언문 의미
선언은 성과 결혼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변경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톨릭 전례 행위의 맥락에서 이해되어 온 ‘축복’ 행위의 개념을 더 확장한 것이다. 축복의 대상에 동성 커플이나 비정상적인(Irregular) 혼인 상태에 있는 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동성 결합 자체에 대한 교회의 승인 또는 역사적인 전향으로 오해돼서는 안 된다.
■ 축복 행위 의미의 확장된 이해
선언의 핵심은 21항에 담긴 축복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 자비하신 하느님의 ‘축복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며, 그 누구도 이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이다. 어떠한 신분(Status), 어떠한 혼인의 상태(비정상적인 혼인 상태나 동성 결합의 상태 등)에 있더라도, 그들이 청하는 ‘사목적’ 축복을 허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 전례 행위로서의 ‘축복’과 사목 행위로서의 ‘축복’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2021년 2월 22일 ‘교회는 동성 간의 결합을 축복할 권한을 지니는가?’에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번 선언이 답변의 내용을 바꾸거나 완화한 것은 아니다. 2021년의 답변은 축복을 ‘준성사’라는 전례 행위의 맥락으로 제한적으로 해석, 동성 간의 결합을 (전례 행위로서) 축복할 권한은 교회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선언은 축복의 사목적 의미를 확장하면서 첫째 ‘하느님의 축복은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는 사실과, 둘째 ‘교회의 공적 전례 행위로 오해받을 위험이 없는 적절한 방식으로만 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 오해와 혼란 피하기 위한 지침
따라서 ‘동성 커플이 원할 경우 가톨릭 사제가 이들에 대해 축복을 집전해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전례서와 전례 의식에 따른 축복을 집전하는 것은 문헌이 발표된 지금도 불가하다. 또한 이들이 축복을 청할 때 어떤 방식으로 축복해야 한다는 규정이나 지침을 각 교구나 주교회의 차원에서 마련해서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자체로 교회의 공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식별 위한 사목적 감수성 교육
축복을 청하는 이들의 영적 선익을 위해 축복해 줄지에 대한 식별은 사제의 몫이다. 전례 행위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기를 청하는 이들에게 사목적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비는 것은 사제 개인의 사목적 식별에 맡겨진다. 그래서 문헌은 ‘축복예식서’에 담겨 있지 않은 이 사목적 차원의 축복을 하기 위해 사제들의 사목적 감수성이 잘 교육돼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 동성 결합 자체에 대한 축복이 아닌 커플 개개인에 대한 사목적 축복
선언의 주된 내용은 비록 동성 결합의 형태를 살고 있는 이들이더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그들의 바람과 개개인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교회 구성원이 분명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교회의 공적 권위로 행하는 전례 행위로서의 축복이 아니라, 커플들 개개인에게 사목적 배려로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줄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