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지키기 위해 거대 자본 맞서 평화의 연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막고자
매달 맹방해변에서 미사 봉헌
탈핵·탈석탄·탈송전탑 외치며
피켓 들고 ‘탈탈탈 도보순례’도
생명을 틔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3월의 자연. 온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땅과 달리 바다는 아직 겨울의 옷을 벗지 않았다. 쉼 없이 부는 차가운 바닷바람에 귀 끝이 얼얼하다. 인적이 끊긴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에 모인 사람들. 두꺼운 점퍼에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모습이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백사장 위에서 미사가 준비되고 성가가 흘러나온다. 성가를 부르는 사람들 옆에 걸린 현수막에는 ‘아름다운 맹방해변 보고 싶고 걷고 싶다’고 적혀있다. 맹방해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삼척 맹방해변에 모인 사람들
2월 22일 오전 10시, 삼척 맹방해변에 모인 사람들은 같은 모양의 조끼를 입고 있다. 각각의 조끼에는 ‘핵·석탄발전소 off’, ‘작은 행동 큰 변화’, ‘맹방해변 살려내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국가톨릭기후행동(공동대표 강승수 요셉 신부·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이 주관하는 ‘아픈 삼척 되살리기’ 프로젝트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맹방해변으로 모인 것이다. 이들이 삼척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2021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스코에너지가 출자한 삼척블루파워가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결정하면서 지역의 기후위기 악화,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한 삶이 위협받는 것을 우려해 발전소 건설을 막기 위해 힘을 모으고자 한 것이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연대 프로젝트인 ‘아픈 삼척 되살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매달 맹방해변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해변에서 원전백지화기념탑까지 피켓을 들고 걸어가는 ‘탈탈탈 도보순례’를 이어오고 있다. 인적이 끊긴 해변에 모인 10명 남짓한 사람들. 서울과 의정부,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농사를 짓고, 어린아이를 키우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환경과 관련이 없는, 더욱이 삼척과 연결고리가 없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아파하는 삼척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삼척과 같은 일이 나에게,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은 그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석탄 운송을 위해 항만부두와 방파제가 지어진 맹방해변 앞 바다는 이미 심각한 해안침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졌던 ‘명사십리’(明沙十里)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맹방해변에는 해변을 지키고 싶은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남아있을 뿐이다.
재의 수요일이었던 이날 미사는 한국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강승수 신부와 원주교구 박홍표(바오로) 신부가 공동집전했다. 강승수 신부는 강론에서 “우리는 맹방해변이 훼손된 아픔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길로 가는 여정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활동과 투쟁을 통해 펼쳐질 세상에 대한 희망과 이상적인 모습 찾으며 사순 시기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탈탈탈’은 생명과 평화를 위한 일
미사가 끝난 뒤 ‘모두를 위한 집 지구와 삼척을 위한 기도’도 함께했다. 둥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땅과 바다, 하늘을 향해 감사함과 미안함을 표시하며 연대를 통해 자연을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마음속에 새겼다.
이윽고 현수막과 깃발을 꺼내들고 ‘탈탈탈(탈핵·탈석탄·탈송전탑 희망) 도보순례’ 길을 나설 채비를 마친 사람들은 ‘핵 없는 생명 세상으로’, ‘석탄 화력 중단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나눠 들고 해변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원전백지화기념탑까지는 1㎞ 남짓.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휴가철이 아니기도 했지만 주변에 민가나 건물이 없다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만이 순례객들 옆을 빠르게 지나갈 뿐이었다. 외롭고 막막한 이들의 순례길은 거대 기업을 향한 간절한 목소리가 닿지 않는 현실과 닮아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외로운 길을 걷는 이들 옆에 가까이 서자 그들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힘찬 발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기에 이들은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연대의 힘은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을 가능케 하는 희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톨릭기후행동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운영위원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본적인 행위인 걷기를 통해 환경이 파괴되는 현실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도보순례를 함께하게 됐다”며 “핵에너지의 폭력성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이기에 ‘생명 평화’ 순례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고 있고, 앞으로도 함께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처음 탈탈탈 도보순례에 참여한 최준석(마르티노·12)군은 “제가 좋아하는 바다가 변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라며 “석탄화력발전소가 없어져서 자연을 다시 되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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