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쟁과 기아에 유일한 희망… 문 닫지 않게 도와주세요
내전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재정 어려움으로 문 닫을 위기
착한 사마리아인의 손길 절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 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전경.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관구장 서숙자 루갈다 수녀, 이하 수녀회)는 오랜 내전으로 공포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하 중아공) 사람들을 위해 1980년대부터 현지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선교 수녀들은 교육과 의료사업을 하고 있는데, ‘파티마의 성모진료소’(Dispensaire Notre Dame de Fatima, 이하 성모진료소) 운영은 가장 두드러진다.
끝나지 않는 내전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폐쇄 위기에 놓인 성모진료소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손길이 절실하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 중인 이영희 수녀(맨 왼쪽)와 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직원들.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제공
■ 성모님의 손길로
중아공 수도 방기(Bangui)에 위치한 성모진료소에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치료를 받기 위해 모인 주민들이 긴 시간 줄지어 서 있다. 환자는 많지만, 의료인력과 의약품, 기생충 검사를 위한 시약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간단한 질병 또는 풍토병인 말라리아에도 밤낮없이 진료소를 찾는다.
성모진료소에서 현지 의대생이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제공
중아공에는 끝나지 않는 내전으로 주민들 건강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중아공 주민들은 내전의 직접적 피해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필수 의료서비스의 접근성 또한 제한돼 있다. 만성적 의료 위기 속에서 주민들은 말라리아와 기생충 감염 등 여러 질병에 취약해져 있다. 특히 여성과 아동은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선교 수녀들은 1995년부터 가장 가난한 빈민지역 주민들을 위해 성모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성모진료소는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예방접종 등을 하고 에이즈 감염인들을 돌본다. 반군들과 무장단체의 폭력이 있을 땐 국경없는의사회, 적십자 단체와 협력해 야전병원 역할도 했다.
중아공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증이 매우 심각하다. 중아공에는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심리학자나 정신건강학 의사의 수가 굉장히 적고 치료비도 비싸 환자 대부분은 치료받기 힘들다. 성모진료소는 이들을 위해 모래놀이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현지 어린이들이 성모진료소에서 나눠준 급식을 먹고 있다.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제공
성모진료소는 영양실조 위기의 아이들을 위해 급식 지원도 한다. 중아공의 기아 문제는 세계적으로 심각하다. 아일랜드와 독일 NGO 단체에 의해 매년 발표되는 세계기아지수(GHI)에서 중아공은 매번 최하위 성적을 기록한다. 2022년 지표에서는 영양결핍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지정됐다.
선교 수녀들은 현지 교육과 성소 계발에도 힘쓰고 있다. 한 선교 수녀는 방기에서 165㎞ 떨어진 보쌈벨레 (Bossembele) 지역에서 유치원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또 지역본당에서 성소담당 소임도 맡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성모진료소는 그야말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과 생명의 길이다.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은 현지 의과대학생들.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제공
■ 희망의 씨앗 뿌리다
만성적 의료 위기에도 불구하고, 중아공에는 병원과 의사가 매우 부족하다. 가톨릭계 의료기관도 없는 상황이다.
선교 수녀들은 의료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호소해왔다. 수녀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 후원자들은 2005년부터 중아공의 가톨릭 신자 의과대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 장학생 중 20여 명이 어엿한 의료인이 됐다. 이종명(크리스토폴·대구 욱수본당)씨의 도움으로 1호 장학생은 6년간 세네갈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중아공 유일의 신장내과 전문의가 되어 돌아왔다. 전문의가 된 1호 장학생은 중아공에서는 처음으로 혈액 투석을 하고 있으며, 방기 의과대학에서 후학양성도 하고 있다.
한국 후원자들은 의대생뿐 아니라 IT 공학과 심리학 전문가 양성에도 일조했다. 한 원로사제의 뜻과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에 따라 2012년 3명의 중아공 청년이 대구대교구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 지원으로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중 심포리엔 요키돈시아씨는 IT 공학 박사학위까지 받아, 지금은 중아공 정부에서 일하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성모진료소 직원이 환자에게서 채취한 내용물을 검사하고 있다.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제공
■ 따뜻한 도움의 손길 절실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선교 수녀들의 노력에도, 성모진료소는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여 있다. 반군들과 무장단체의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환자들은 늘어나는데, 운영비용 마련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직원들 봉급도 줄 형편이 못 되며, 아이들 급식에 들어가는 자금도 부족하다.
성모진료소는 사실상 수익을 내기 힘들다. 이곳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아이들과 임신부는 무료, 성인들은 1500프랑세파(FCFA)를 낸다.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 정도를 내면 일주일 동안 같은 질병에 한해 진료와 검사, 약을 받을 수 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도 성모진료소가 저렴한 진료비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비워 가난한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수녀회 창설자 루이 쇼베(Louis Chauvet) 신부의 정신을 지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중아공에서 선교하는 이영희(가타리나) 수녀는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성모진료소는 가난한 이들의 의료 지원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한국 후원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지 의료인력 양성에 보탬을 주던 익명의 한국 후원자 일부는 후원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이라고 밝혀왔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손길이 더더욱 간절한 상황이다.
※후원계좌: 대구은행 504-10-459809-2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문의 053-253-9991(내선2) 대구대교구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
성모진료소 대기환자들. 매일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긴 시간 줄지어 순서를 기다린다.파티마의 성모진료소 제공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 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