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삼종기도를 위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서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CNS
【외신종합】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2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삼종기도 자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교황이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의 책임자로서 러시아 대통령을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황은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연방 대통령’을 향해 7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즉각적인 전쟁 중단’을 호소했다.
교황은 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도 “평화를 위한 진지한 제안에 열린 자세를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정치 지도자를 향한 교황의 이러한 호소는 양국이 모두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대화를 나눌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15%에 해당하는 지역을 러시아로 병합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를 바탕으로 반격에 나서 전쟁 주도권을 쥐고 상당한 지역을 재탈환했다.
교황은 현재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압력과 평화 노력 없이는 전쟁 당사국의 휴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 국제사회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4개 지역을 병합하려는 시도를 국제법 위반으로 비난하고, 교황청은 이를 불법 행위로 간주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삼종기도에서의 연설 전체를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에 할애한 교황은 러시아군의 야만적 행위를 염두에 두고 “어떤 행동들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부차와 자포리자 등 지역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의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치 지도자들의 핵무기 사용 위협에 대해 “인류가 또다시 핵무기의 위협에 직면할 수는 없다”며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전쟁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이에 앞서 교황은 9월 28일 교황청에서 예수회원들과 만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용납할 수 없고 혐오스러우며, 무의미하고 야만적이며 신성모독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교황은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순한 선악의 문제로만 간주해서는 안 되며 두 나라 간의 전쟁에 국한되지 않는 일종의 세계대전이라고 말했다.
또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위협과 관련해, 이는 국제 평화에 대한 ‘혐오스러운 위협’이며, 국제사회가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 시민들을 향해 전쟁 참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9월 21일 러시아의 예비군 30만 명 동원령 발동 즉시 “용맹하게 병역 의무를 다하라”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고 말했다. 이어 25일 주일미사에서는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고 이를 통해 “모든 죄가 씻긴다”고 선동했다.
하지만 러시아 가톨릭 주교단은 정부에 양심적 참전 거부를 인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주교단은 9월 28일 발표한 사목교서를 통해 “전쟁의 적대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가장 내밀한 인간 양심의 문제에 속한다”며 푸틴 정부는 양심적 거부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월 2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 교황은 이날 삼종기도 자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즉각 전쟁을 멈출 것을 호소하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도 평화협상에 적극 나설 것을 호소했다.C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