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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특집] 이주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9-21 조회수 : 860

이방인 아니라 이웃! “자주 만나 대화하니 편견 사라졌어요”

약 200만 명 한국에 유입되며
이제는 한국에 필요한 구성원
여전히 남아있는 이주민 편견
형제애로 받아들이고 해소해야


검은 얼굴에 어눌한 말투로 “사장님 나빠요”라며 불만을 토로하던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블랑카. 코미디 캐릭터 블랑카는 2000년대 초반 미디어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한국인에게 비친 이주민의 이미지를 대변했다. 이렇듯 한국에서 이주민은 오랫동안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이웃이 아닌 이방인에 불과했다.

블랑카가 등장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족한 점들을 채우는 그들은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된 이주민과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9월 18일 열린 언어학교 스페인어 수업에서 에콰도르인 소로꼬 수녀(성체선교클라라수녀회)가 스페인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한국사회 속 이주민의 중요성

한국에 이주민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1980년대다. 1989년을 정점으로 국내 중소 제조업체에서 인력난이 심각해지면서 이를 해결하고자 산업기술연수생 제도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됐다. 지방과 수도권 공장에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결혼이주여성의 유입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 여성과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가속화됐다. 또한 농촌지역 미혼남성의 배우자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우리보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외국인과의 결혼이 증가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이주민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온 이주민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0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214만6748명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45만5000명, 결혼이민자가 17만3000명, 유학생이 14만2000명이다. 외국인 주민 수 최초 조사 연도인 2006년의 53만6627명에서 약 4배 증가한 수치다.

이주민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빈 곳을 그들이 채워주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국인들이 일을 기피하는 지방 공장에서, 일이 고된 농축어업 현장에서 그들은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외국인 없이는 공장 운영이 안 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고향을 외국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기업인과 농부의 말은 우리가 어떻게 이주민들과 동행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됐음을 상기한다.


대전 모이세 언어학교에서 베트남어 수업을 듣고 있는 엄상용씨(오른쪽)가 베트남 이주민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 함께 미래를 건설하는 이주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108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에서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 미래 건설하기’를 강조했다. 이방인의 유입을 풍요로움의 원천으로 표현한 이사야 예언서의 내용을 빌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들 덕분에 우리는 우리 세상과 세상이 지닌 아름다운 다양성을 더 잘 알게 되는 기회를 얻는다”며 “미래를 건설하는 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협력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형제자매인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 협력하자”고 전했다.

한국교회가 이주민, 난민과 함께 미래를 건설코자 한 역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향신자사목부와 해외교포사목부를 통합해 1981년 이주사목위원회를 설립한 주교회의를 필두로 서울, 인천, 수원 등 8개 교구는 이주사목 관련 위원회와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상담센터, 쉼터, 공동체 운영뿐 아니라 국가별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며 이주민들을 위한 사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0년 넘게 이주민과 함께해온 교회의 사목은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한국사회에서 이방인에 머물렀던 이주민들이 한국인들과 ‘가족’이 됐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주사목의 변화도 가져왔다. 교회의 지원을 받는 것에서 벗어나 이주민 스스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수직적이던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하자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시에라리온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스마트씨가 9월 18일 한국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 더불어 살아가는 이주민

9월 18일 오후, 대전 오정동에 위치한 대전가톨릭사회복지회 별관 3층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대전 모이세’ 사무실에 외국인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책장으로 향한 이들은 책을 꺼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한국어를 배우려 모였나 싶었지만, 이들이 가져간 책은 영어회화 교재였다. 30분이 되자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대전 모이세 사무실로 몰려들었다. 이윽고 60대로 보이는 여성신자들도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들어와 방으로 들어갔다. 이주민이 진행하는 언어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신자들이 찾아온 것이다.

“What is your name?”

“옆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보세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스마트(34)씨의 영어수업에는 어린이 4명이 참여했다. 사무실 한켠에서 열린 베트남어 수업은 선생님과 학생 한 명이 오붓하게 수업하고 있다. 학생이 열심히 베트남어 발음을 배우는 것 같더니, 곧이어 학생이 선생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강단에서 베트남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엄상용(토마스 아퀴나스·둔산동본당)씨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케냐인 저신타씨의 교실에는 추석음식이 한 상 차려졌다. 명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을 저신타씨에게 한국 음식을 먹이고 싶었던 학생 김경란(율리아나·전민동본당)씨가 음식을 싸 온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추석을 보낸 저신타씨는 전과 송편을 먹으며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도 배불리 채워가는 듯 보였다.

대전 모이세 언어학교는 이주민들이 한국인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학교다. 대전 모이세 전담 안성준(도미니코) 신부는 언어 공부를 넘어 한국인과 이주민이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학교를 열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언어학교는 3월과 9월 두 학기로 운영된다. 9월 4일 시작된 이번 학기에는 영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5개 반이 운영되고 있다. 기존에는 한국인과의 만남이 사목자, 봉사자에 국한됐다면 언어학교를 통해 이주민들이 보다 많은 한국인과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언어학교에서 외국인과 관계 맺으며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날 영어 수업을 들은 김순자(수산나·대전 삼성동본당)씨는 “외국인, 특히 흑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있었는데 저신타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주민들도 언어학교에 대한 만족감이 높다. 스마트씨는 “한국에 3년째 살고 있지만, 한국인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며 “언어학교에서 친절하고 감사한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한국을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모이세는 저에게 한국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준 고마운 곳”이라고 덧붙였다.

대전 모이세 언어학교는 이주민과 한국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여전히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문화와 전통을 나눠 풍요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교황의 메시지에 응답하고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2-09-25 [제331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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