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서울 강남구 구룡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는 이재민 95명이 머물렀다.
▲ 8일부터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이 큰 피해를 입었다. 독자 제공
“죽지 않은 건 감사하죠. 그런데 이럴 때마다 감사해야 하는 건가요?”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집을 잃은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 김향순(가명, 59)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8일부터 내린 폭우로 인해 15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에서 14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으며, 26명이 다쳤다. 특히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 피해는 한강 이남 지역에 집중됐다. 발생한 이재민은 모두 1938명인데, 99%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김씨가 사는 판차촌 구룡마을은 특히 심각한 피해를 봤다. 10일 오후 6시쯤 구룡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는 이재민이 머무는 텐트로 빼곡했다. 허말숙(가명, 90) 할머니도 폭우로 33년 동안 정든 집을 잃었다.
허 할머니의 집 인근에 살던 며느리 양미연(가명, 70)씨도 이재민이 됐다. 양씨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환경미화원이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생계가 아닌 안전이다. 몸이 건강한 이상 어떤 일이든 해서 돈은 벌 수 있지만, 안전한 집은 그의 주머니 사정으론 마련할 도리가 없다. “체육관에서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곧 학교가 개학하는데, 그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폭우로 판자촌 주민 못지않게 큰 피해를 본 이들이 바로 반지하 거주자다. 집중호우가 시작한 8일 서울 관악구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이 차올라 창문을 열 수 없어 탈출을 못 한 탓에 빚어진 비극이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충열 신부는 이번 참사에 대해 “저지대 상습 침수지역은 대부분 주거취약계층이 거주하는 곳”이라며 “참사의 원인이 단순히 자연재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적절한 주거 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매 재해 때마다 사고는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수해를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라는 인식을 벗고 빈곤층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회문제’라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각 자연재해에 맞는 시설과 건축물이 있다”며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의 경우 이미 재해에 대비한 시설이나 장비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에 이런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집중 호우와 같은 사태를 대비해 비상 보트나 저수조 등을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생활안전지도를 공개해 재해위험지역을 공시하고 있다. 홍 교수는 “이런 정보를 반영해 지역에 맞는 건축을 하면 좋은데 집값이 떨어질까 우려된다”는 민원이 많아서 실행이 쉽지 않다고 했다. 주거 안전 대책 마련과 함께 국민 인식 제고에도 힘써야 하는 이유다. 홍 교수는 정부를 향해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안전시설 확보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환기하고 실질적인 안전대책을 추진력 있게 실행해야만 한다”며 “개인의 안전의식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한 안전 대책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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