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이 9월 10일 헝엑스포 E2 전시관에서 참가자들에게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주제로 워크숍 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1000여 명의 신자들이 이탈리아어로 진행된 염 추기경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제52차 세계성체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52차 세계성체대회가 9월 12일 폐막했다. 이번 대회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신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한국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장신호 주교(한국 대표, 대구대교구 총대리), 신우식 신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 등 대표단만 참가했다. 대회 중 한국 대표단의 활동을 전한다.
■ 아픔을 기억하며 시작한 일정
염수정 추기경은 6일(이하 현지시각) 헝가리에서의 첫 번째 일정으로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을 찾았다. 다뉴브강은 지난 2019년 5월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염 추기경은 헝가리에 도착해 숙소를 향하기 전에 다뉴브강에 세워진 한국어·영어·헝가리어로 제작된 추모 조형물을 찾아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염 추기경은 사고 당시 헝가리 에스테르곰-부다페스트대교구장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에게 한국인들의 구조와 그 가족을 돌봐줄 것을 부탁한 바 있다. 이에 에르되 추기경도 당국에 적극 협조를 부탁했다.
염 추기경은 “최근 참사 2주기를 맞이하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세계성체대회 참석차 부다페스트를 향하게 되었을 때 그분들을 꼭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하느님께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해 주시기를 청하며 기도했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추기경께서 출국 전부터 첫 일정으로 다뉴브강에 꼭 가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기도가 끝난 후에도 말없이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보셨다고 한다”고 전했다.
■ 성체 신심으로 친교 이루다
성체를 향한 믿음으로 세계인이 하나 된 이번 대회 중 한국 대표단은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신자들과 친교를 나눴다. 특히 교리교육과 워크숍 등은 한국 대표단이 세계의 신자들과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부다페스트 세계성체대회 지역위원회의 초청을 받은 염 추기경은 10일 오후 2시30분 헝엑스포(Hungexpo) E2 전시관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주제로 참가자들에게 워크숍 강연을 했다. 이탈리아어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신자 1000여 명이 염 추기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강연에는 한국 대표 장신호 주교를 비롯해 박철민 주헝가리 대사, 오스트리아 비엔나 한인본당 주임신부로서 부다페스트 한인 공동체를 함께 사목하고 있는 송영훈 신부도 참석했다.
특히 이날 강연 후 1989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가했던 헝가리 여성 신자가 염 추기경을 찾아와 눈길을 끌었다. 이 신자는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추기경을 만나 큰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다”며, “추기경과 한국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해 시간과 국경을 넘어 성체 안에서 친교를 이루는 대회의 은총을 실감하게 해줬다. 이에 앞서 염 추기경은 7일에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대회에 참석한 외국인 신부를 만나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 대표단의 참석은 세계교회 안에서도 주목받는 일이었다. 특히 여러 매체들이 염 추기경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교회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염 추기경은 10일 오전 9시 가톨릭교회의 국제 방송사인 EWTN과 인터뷰를 진행해 남북한 교회의 현실, 한국교회의 성체 신심, 한국 청년들의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또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세계성체대회 공식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염 추기경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염 추기경이 6일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2019년 유람선 침몰 사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장신호 주교(앞줄 가운데)와 주교회의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장 주교 오른쪽) 등 한국 대표단이 신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장 주교 왼쪽은 박철민 주헝가리 한국대사.제52차 세계성체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한국 대표 장신호 주교가 11일 성체거동행렬에 함께하고 있다.주교회의 제공
염 추기경이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 참가 신자와 대화하고 있다.주교회의 제공
염 추기경이 가톨릭교회 국제 방송사인 EWTN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주교회의 제공
■ 전례 안에서 일치하다
세계성체대회의 가장 중요한 일정은 바로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미사다. 대회 중에는 매일 미사와 기도, 성체행렬 등의 전례가 진행된다. 한국 대표단은 세계 신자들과 함께 전례에 참례하며 성체 안에서 기도했다.
특히 한국 대표단은 11일 세계성체대회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성체거동행렬에 함께했다.
행렬 전 코슈트(Kossuth) 광장에서 한국 대표단도 함께 봉헌한 미사에는 동방정교회 세계 총대주교 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에르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이번 대회가 유럽의 그리스도교적 뿌리와 동서교회 간 과거의 일치를 기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도 “우리는 공통의 뿌리와 신앙을 갖고 있다”며 대회 초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미사 후 한국 대표단은 초를 들고 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기도와 성가를 바치며 성체가 모셔진 성광을 뒤따랐다. 행렬은 코슈트 광장에서 영웅 광장에 이르기까지 3.5㎞가량 이어졌다. 영웅 광장은 1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대회 파견미사가 봉헌된 곳이다. 행렬의 마지막은 에르되 추기경의 성체 강복으로 마무리됐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1-09-19 [제3262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