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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은지금] "규제 없는 금융은 투기로 변질" 교황 경고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5-12 조회수 : 2462

5월 기도지향 메시지에서 "금융시장이 지금처럼 부풀려진 적 없었다" 우려



▲ 세계적 금융사들이 밀집한 뉴욕 월 스트리트를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CNS)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근영 / 바티칸뉴스 번역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전문]

교황의 말씀과 행보, 그리고 교황청의 동향을 살펴보는 코너죠.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와 함께하는 <바티칸은 지금>, 김근영 번역가 전화로 연결합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바티칸뉴스 김근영 가비노입니다.


▷ 5월 성모성월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5월 기도지향 영상 메시지가 나왔군요.

▶ 5월은 보편지향이고, 금융계를 위한 기도를 바칩니다. 교황님은 5월 기도지향 영상 메시지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실물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한탄하시는 한편, “금융시장이 지금의 모습처럼 부풀려진 적은 없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아울러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과 “거액이 오가는 금융거래”의 세계가 서로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황님은 “금융이 규제되지 않으면 각종 통화정책으로 조장되는 단순한 투기로 변질된다”면서,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여기서 “투기”라는 단어를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 투기라고 하니, 최근의 비트코인이나 주식열풍이 떠오르는데요, 교황께선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인가요?

▶ 교황님이 제시하시는 해법은 “금융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가 돼야 하고,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데 봉사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다른 종류의 경제를 실현할 시간이 아직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보다 정의롭고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금융시장 질서를 정립하여 시민들을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게 금융책임자들이 정부와 협력하도록 기도하자하고 호소하셨습니다.


▷ 지난주는 부활 제6주일이었습니다. 교황께선 삼종기도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요?

▶ 교황님은 지난 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삼종기도 훈화를 하셨는데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머무르다’라는 열쇳말을 다시금 강조하셨는데요. 예수님의 사랑에 머무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라고 풀이하시면서, 이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세속의 안락함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세속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다른 사랑들, 예컨대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성공을 사랑하는 사람들, 허영을 사랑하는 사람들,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예로 드시면서, 이러한 사랑은 우리를 강압적이고 이기적이며 자아도취적인 사람이 되게 만든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이렇게 세속이 제안하는 기만적인 사랑들이 사랑을 퇴보하게 만든다면서, 오늘날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을 언급하셨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저는 폭력으로 변하는 병든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곁에 있는 이를 인정하고, 그의 자유를 존중하며,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무상으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라고,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숭배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숭배하며 사는 사람은 거울 속에서 삽니다. 늘 자신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종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겨야 합니다.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타인에게 우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 오는 9월 26일은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관련해서 담화가 나왔군요. 요지가 무엇인가요?

▶ 우선 매년 9월 마지막 주일에 지내는 ‘세계 이민의 날’이라는 명칭이 올해부터 한국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결과에 따라 보편교회의 명칭에 걸맞게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변경됐습니다. 이번 담화의 주제는 “보다 큰 ‘우리’를 향하여”인데요. 여기서 ‘우리’가 담화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울타리의 우리가 아니라 ‘너’와 ‘나’ 그리고 ‘우리’할 때의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담화에서 왜 ‘우리’가 더 커져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생기는데요. 답의 실마리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 있습니다. 35항을 보면, 코로나19와 같은 전 세계적 보건위기가 지난 뒤의 최악의 반응을 두 가지로 예견하고 있는데요.


▷ 그것이 무엇인가요?

▶ “열광적인 소비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이기적인 자기 보호에 더욱더 빠져드는” 현상입니다. 교황님은 담화를 통해 이 두 가지를 우려하시면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우리’만 존재하기를 바라야 한다면서, 우리는 실존의 변방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이주민, 소외된 이들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양성과 문화 간 대화로 풍요로워지는” “다채로운 미래”를 꿈꿔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문화 간(intercultural) 대화’라는 표현이 나온 취지는 우리가 흔히 ‘종교 간(interreligious) 대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데요, 서로 다른 종교지만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처럼, 이주민과 난민, 원주민과 외국인도 이런 방식으로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우리’가 돼야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외연이, ‘우리’의 울타리가 점점 더 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기도로 담화를 마무리하셨는데요. “쫓겨나고 배척당하고 버림받은 이가 우리의 ‘우리’ 안으로 받아들여질 때마다 ‘우리’는 더 커진다”며 “이주민과 난민들을 교회의 ‘우리’ 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자고 청하셨습니다.


▷ 교황께서 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했다는 소식이 들리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을 하신 건가요?

▶ 교황님은 지난 8일 보다 빠르고 공정한 글로벌 백신 접종을 촉구하는 콘서트 ‘백스 라이브’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그동안 백신 공유의 필요성을 강조해 오신 교황님은 “개인주의라는 바이러스”가 우리로 하여금 자유롭거나 서로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며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게 만든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바이러스는 “폐쇄적 민족주의”라는 바이러스로 변질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또 우리가 시장이나 지식재산권의 법칙을 사랑의 법칙과 인류의 건강보다 우선시하는 변종 바이러스의 위험, 또한 소수의 부자들이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파괴하는 소비주의 경제를 촉진하는 변종 바이러스의 위험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황님은 백신의 보편적인 접근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일시적으로 면제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복자 샤를 드 푸코의 시성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있네요.

▶ 지난 3일 교황님은 2명의 복녀와 5명의 복자들의 시성절차에 대한 투표를 위해 정기 추기경회의를 주재하셨습니다. 시성식 날짜는 아직 미정이고요. 코로나 사태로 시성식 날짜가 차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시성식 후보자들 가운데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이 있는데요. 43세에 서품을 받은 소위 늦깎이 사제로, 알제리 사하라 사막에서 살면서 성경을 묵상하고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인 형제’가 되려는 열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지나가던 약탈자 무리에 의해 피살된, 그러니까 순교자입니다.

샤를 드 푸코 신부님 외에 다른 복자들은 △‘데바사하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인도의 평신도 복자 라자로 △카푸친 제3수녀회 창립자 예수의 마리아 프란체스카 수녀 △성가정의 작은 자매회의 창립자 마리아 도메니카 만토바니 △그리스도 교리 사제회 창립자 세자르 드 뷔 신부 △성가정 형제수도회와 가난한 이들의 수녀회 창립자 루이지 마리아 팔라촐로 △성소사목을 위해 성소수도회를 창립한 주스티노 마리아 루솔릴로 신부 이렇게 총 7명입니다.


▷그렇군요. 교황께서는 수요 일반알현에서 기도에 관한 교리교육을 이어가고 계시죠. 이번이 서른두 번째 시간입니다. 주제는 무엇이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요?

▶ 교황님은 지난 5일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열린 일반알현을 통해 ‘관상 기도’를 주제로 교리교육을 진행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미술작품을 바라보거나,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며 관상기도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관상은 활동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면서, 실제로 예수님을 보면 관상과 활동 사이에 아무런 대립이 없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관상과 활동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속하지 않는 이원론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아울러 교황님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의 체험을 인용하셨는데요. 비안네 신부님이 본당 신부로 있을 때 감실 앞에서 기도하던 어떤 농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 교황님은 이 말을 거듭 반복하셨는데요. 사랑의 관상기도는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우리가 하느님의 위대하고 신실한 사랑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에는 사랑의 길을 따라 예수님을 따르라는 단 하나의 위대한 부르심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의 정점이자 중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과 관상은 동의어입니다. 사랑과 관상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순수한 사랑의 작은 행위가 다른 모든 행위를 합친 것보다 교회에 더 유용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오만이 아니라 기도에서 나온 것, 겸손으로 정화된 것은 비록 그것이 비록 감춰져 있고 말없는 사랑의 행위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상 기도의 길입니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는 이 사랑의 행위는 교회에 많은 유익을 가져옵니다.”


▷ 네. 교황의 말씀과 행보, 그리고 교황청의 동향을 살펴보는 <바티칸은 지금>, 김근영 번역가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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