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가운데)과 교회 인사들이 2017년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해 서명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꾸준히 낙태 반대
운동을 벌여왔지만, 낙태 합법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가톨릭평화신문DB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처벌하는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을 때, 헌법재판소 앞에서 환호하던 여성들을 말이다. 몇몇은 “드디어 낙태가 죄가 아니게 됐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다. 한 생명을 사라지게 한 일이 죄가 아닐 수 있다는 판결에 환호하고 감격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사회 생명 의식의 민낯을 본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임신 10주차의 태아만 하더라도 심장과 장기가 다 있고 손과 발을 스스로 움직인다. 엄마 배 속에 낙태 수술 도구가 들어오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생명이다. 낙태는 그런 아기를 갈가리 찢어 죽이는 행위다. 이런 일이 죄가 아니라면 무엇이 죄일까.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런 법적 처벌이나 제한 없이 낙태를 언제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달라니.
헌법재판소는 당시 판결에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안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정부는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임신 15~24주는 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을 제시했다. 결국,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현실에 생명수호가들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 어떠한 경우도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권리는 없다. 낙태를 둘러싼 논쟁과 낙태죄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 생명수호가들의 대안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 용인 천주교 묘원 내에 조성된 낙태아 묘에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떠난 아기들을 위한 십자가가 꽂혀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Q. 정부가 발표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A. 14주 이내에는 이유 불문하고 여성이 원할 경우 낙태가 가능하다. 임신 15~24주 이내에는 법이 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낙태가 가능하다. 허용된 사유로는 △강간ㆍ준강간 등 범죄 행위로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 지속이 사회 경제적 이유로, 임신한 여성을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하거나 처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 △임신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임신한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다.
임신 15~24주 이내에 사회 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하려면 법으로 정한 상담 절차를 거친 뒤 24시간 숙려기간을 가져야 한다. 낙태 수술만이 아니라 낙태약도 허용했다. 배우자 동의 없이도 낙태가 가능하고,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 없이도 낙태할 수 있다.
의사는 신념에 따라 낙태 수술을 거부할 수 있다. 임신ㆍ출산을 지원하는 중앙기관을 설립하고, 보건소에 임신ㆍ출산 종합상담기관을 두기로 했다.
Q. 개정안에 대해 낙태를 반대하는 측과 찬성하는 측 모두 반대하고 있다. 왜 그런가.
A. 낙태 찬성자들은 낙태죄 전면 폐지와 낙태 완전 자유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낙태죄 조항을 그대로 두고 낙태 허용 조건을 추가했다. 낙태죄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반대하는 것이다. 또 임신 25주 이후에는 낙태할 수 없고 임신 14~24주에는 상담을 받아야 하는데, 상담받는 것조차도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보고 있다.
낙태 반대자들은 임신 14주 이내에 아무런 제한 없이 낙태할 수 있게 한 개정안에 분노하고 있다. 또 낙태 허용 사유에 포함된 ‘사회 경제적 사유’가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지적하며 사실상 임신 24주 이내 모든 낙태를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Q. 임신 24주 이내라는 기준이 있는데 왜 모든 낙태가 허용됐다고 하는가.
A. 현재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는 낙태 수술의 대부분은 임신 12주 이내에 이뤄진다. 개정안에선 임신 14주 이내에는 어떤 제한도 없이 낙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사실상 낙태를 다 허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또 낙태 허용 조건에 ‘사회 경제적 사유’가 포함됐다. 쉽게 말하면 임신한 여성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하고, 사회생활이 힘들게 됐다고 이유를 대면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다.
태아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처사다. 태아는 엄마의 상황에 따라 힘들면 버려지고 성가시게 여겨지면 사라지는 존재로 전락했다.
Q. 낙태약도 허용된다는데, 수술보다 약물 복용이 안전하지 않은가.
A. 절대 그렇지 않다. 개정안에 거론된 자연유산유도약물은 오히려 여성 몸에 더 위험하다. 응급 피임약이라고 불리는 낙태약은 고농도 호르몬제로 여성 몸의 호르몬을 강제로 교란시켜 수정란이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 구토, 복통, 두통, 출혈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 낙태약을 먹고 사망한 사례도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도 정부의 약물 낙태 허용에 대해 “국내 임상 시험 후 신중한 검토를 요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Q. 현재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그대로 법이 되는 것인가.
A. 그렇지 않다. 정부는 40일간 각계 의견을 수렴해 심사와 회의를 거쳐 최종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안 말고도 여러 단체와 개인이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여러 법안을 검토한 뒤 최종 법안을 승인한다. 그러나 당ㆍ정ㆍ청이 합의해 내놓은 입법안을 무시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Q. 정부 입법안에 반대하는 생명수호가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A. 낙태 합법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됐다. 낙태 가능한 임신 주수를 줄여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는 대안에 주력하고 있다. 낙태 수술이 보다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낙태 허용 시기를 임신 10주 미만으로 제안했다. 또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임신 기간에 상관없이 반드시 상담을 받고 숙려기간을 의무적으로 갖도록 했다.
법을 개정하는 것 이외에도 남성 책임을 강화하는 양육책임법 제정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가의 역할은 사회 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할 것이 아니라, 낙태하지 않고 출산ㆍ양육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양심에 따라 의사가 낙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에 더해 기관(병원)에서도 낙태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가톨릭계 병원에서 낙태수술이 이뤄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Q. 가톨릭교회 입장은 어떠한가. 생명수호가들의 대안인 임신 10주 미만 낙태 허용은 찬성하는 것인가.
A.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반대한다.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된다. 임신 3주든, 10주든, 14주든 기간에 관계없이 모든 낙태는 생명을 해치는 일이기에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낙태 합법화를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는 생명수호가들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가톨릭평화방송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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