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올해 6·10 민주항쟁 기념식은 여러모로 특별했습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부모들이 훈장을 받았죠.
가톨릭교회 성직자 3명도 훈장과 포장을 받았는데요.
지학순 주교와 조철현 몬시뇰,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중에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는 지학순 주교의 삶을 돌아보겠습니다.
[기자] 지학순 주교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참 목자였습니다.
1965년 3월 초대 원주교구장에 임명된 뒤 정의롭지 못한 정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학순 주교 / 초대 원주교구장>
"종교에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기류는 이렇다는 것을 종교가 대변한 것일 뿐이지, 종교가 꼭 뭐 해라 안 해라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기류는 이렇다. 우리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이 얘기지. 그걸 알려주는 거야."
반독재를 주장하던 지학순 주교는 1974년 7월 6일 해외에서 돌아오자마자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연행됐습니다.
지 주교는 며칠 뒤 명동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머무는 조건으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지학순 주교가 아니었습니다.
지 주교는 7월 23일 비상군법회의 출두를 앞두고 양심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유신헌법은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 당시 서울대교구장>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양심 밖에 없고, 그래서 내가 지 주교님 보고 ‘양심대로 하십시오’. 그런 의미로 다른 것 어떻게 계산을 해볼 수가 없으니까."
결국 지학순 주교는 체포됐고,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지학순 주교 석방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이때 결성됐습니다.
지 주교는 이듬해인 1975년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됐습니다.
수 만 명이 원주역에서 "우리 주교님 오신다"를 외쳤고, 청년들은 존경의 표시로 상의를 벗어 지 주교가 지나가는 길에 깔았습니다.
지 주교는 남북 분단의 현실도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습니다.
북한 평안남도가 고향인 지 주교는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첫 상봉에서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지학순 주교 / 초대 원주교구장> 1985년 평양 이산가족 상봉행사
"슬플 뿐입니다. 이렇게 형제를 나두고 와야 하고 사랑하는 산야, 산과 들을 나둬야 하고 동포와 헤어지고 다시 와야 하니까 슬플 뿐이오."
지학순 주교의 사목표어는 ‘빛이 되라’입니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 맞서고, 통장을 털어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교회 안팎을 밝혔던 지 주교는 선종 27년 만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
"시대의 양심 고 지학순 주교님, 5·18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고 조비오(철현) 신부님, 실로 이름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이며, 엄혹했던 독재시대 국민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앵커 리포트였습니다.
cpbc 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출처 : 가톨릭평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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