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최초의 우리말 번역가’ 고 선종완 신부… 41권 책에 원고 집대성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60주년 기념설립자 선 신부 성경 번역본·육필원고10년간 수녀회가 이미지 작업·재정리
▲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가 최근 펴낸 선종완 신부의 성경 번역본과 육필원고 영인본 41권.
▲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 구약성경 우리말 번역가이자, 말씀을 교육하고 전하며, 말씀의 영보 수녀회를 설립한 선종완 신부.
평생 말씀과 하나 된 삶을 살았던 사제.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구약성경 우리말 번역가. 방대한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한 성서학자이자, 마지막까지 구약성경 공동번역가로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봉헌했던 선종완(1915~1976, 라우렌시오) 신부의 단독 및 공동번역 원고 영인본이 41권으로 한데 묶여 출간됐다.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는 올해 수녀회 설립 60주년을 맞아 설립자 선종완 신부의 피와 땀이 서린 방대한 양의 신ㆍ구약 성경 번역본과 육필 원고를 펴냈다. 단독번역 원고 및 구약 24권, 공동번역 원고 및 구약 12권, 미출간 신약 원고 5권 등 총 41권이다. 성경 말씀을 새기고 전하는 데 평생을 헌신한 선 신부의 노력과 결실이 집대성된 것으로, 오늘날 성서학자들에겐 보물이요, 길잡이와 같은 자료이기도 하다.
1950년대부터 홀로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번역하며 손으로 꾹꾹 눌러쓴 육필 번역 원고들은 당시 선 신부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 창세기를 번역할 때 9차례나 교정을 본 흔적도 남아 있다. 모두 성경 번역으로 한국 교회에 공헌한 선 신부의 업적이다. 책은 46배판(188x257㎜) 크기이며, 가장 두꺼운 것은 1000쪽에 이른다. 제작 및 인쇄는 기쁜소식이 맡았다.
선종완 신부는 ‘말씀으로 산 사제’였다. 3대 독자였던 그는 1942년 사제품을 받고 일본 유학 후 1945년 경성천주공교신학교(가톨릭대 전신) 교수로 임명을 받았다. 그 후 1948년부터 4년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와 안젤리쿰대학, 성서대학, 예루살렘 성서연구소에서 수학하고 귀국했다. 1955년 서울 대신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처음 구약 번역을 시작했고, 3년 만인 1958년 한국 교회 첫 구약성서 창세기 제1편을 출판했다. 이후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이사야서 등 구약을 줄줄이 번역하며 우리말 성경에 목말라 있던 한국 교회 신자들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히브리어, 라틴어, 아람어 등 고대어와 현대 언어에 두루 능통했던 선 신부는 신학생 시절부터 성경 고전어를 독학했고, 모든 성경을 이미 원서로 읽었던 터였다. 이후 유럽의 성서학자들은 그를 ‘동방의 석학’이라 불렀다.
선 신부는 1960년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했다. 성경 번역과 후학 양성에서 나아가 말씀으로 하나 된 수도 공동체를 세운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늘 낡은 가방 하나를 오토바이에 싣고 서울 대신학교와 과천 수녀원을 오갔다. 성경 관련 삽화조차 없던 그때, 선 신부는 탈출기 경로와 이스라엘 지도, 예루살렘 성전을 전지에 정확히 그려 수업에 활용하는 등 늘 자신의 재능을 아끼지 않았다.
성경 번역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선 신부는 1968년 세계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국내 성서공동번역위원회 가톨릭 측 대표로 위촉된다. 이후 1976년 선종 직전까지 만 9년 동안 성서 공동번역에 힘썼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우리말을 제대로 하시게 되었습니다”란 표현은 선 신부가 공동번역 작업을 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는 선 신부의 번역 원고 영인본 41권 출간을 위해 10년 넘는 작업 기간을 거쳤다. 육필 및 교정본 원고 2만 8000여 장을 보존용 마이크로필름화하고, 원고를 탈산 처리했다. 교정본들도 순차적으로 재정리했다. 공동번역 작업에 임하느라 출간하지 못했던 신약성경 번역 원고도 함께 출간돼 의미를 더했다.
수녀회는 매일 선 신부가 번역한 성경을 통독하며 ‘성서대로 생각하고 성서대로 살아가십시오’라고 했던 설립자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수녀회 설립 60주년 기념일인 3월 25일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수녀원 본원에서 기념 미사와 함께 선 신부의 번역 원고 영인본 41권이 봉헌된다.
편집을 맡았던 수녀회 역사실 담당 정복례(실비아) 수녀는 “몇 번이고 원고지에 고쳐 쓴 흔적들 속에는 모두 신부님 땀과 피가 역력히 배어있다”며 “이제야말로 설립자 신부님의 헌신이 더욱 빛을 보게 됐다”고 했다.
총원장 박미숙(레지나) 수녀는 “신부님의 번역 원고 전문을 출판하면서 다시금 신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며 “많은 분이 성경 번역의 어려움과 결실의 신비를 함께 느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 02-502-3166,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총원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출처: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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