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식사와 따뜻한 위로 주고 주님 은총 듬뿍 받아요
자선 주일 - 무의탁 어르신·장애인 돕는 수원교구 분당성바오로본당 빈첸시오회
▲ 분당성바오로본당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들이 주방에서 어르신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 감을 깎는 빈첸시오회 남성 회원들.
▲ “어르신, 맛있게 드세요.” 한 빈첸시오회 회원이 어르신들에게 음료를 대접하고 있다.
▲ 빈첸시오회 남성 회원들이 소금에 절여 깨끗한 물로 세척한 배추를 차곡차곡 쌓고 있다.
▲ 어르신들 저녁 대접이 끝난 후 회원들이 주방 물청소를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그의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나 하나쯤 없어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은 ‘자선’이라는 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자선 주일을 맞아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눔이 모여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봉사 현장을 찾았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따뜻한 식사에 사랑을 담아
“저녁상에 선짓국과 굴비구이, 호박 무침, 시금치 무침, 달걀말이를 올릴 겁니다. 오늘은 봉사자가 적으니 부지런히 합시다.”
7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무의탁 어르신 돌봄 시설인 프란치스꼬의 집 주방을 찾았다.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수원교구 분당성바오로본당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서종원(안드레아, 60) 빈첸시오회 회장은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거나 연말에 약속이 있는 회원이 많다 보니 6명만 모였다”며 “시설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과 수도자, 봉사자 등 30여 명의 저녁을 1시간 안에 준비해야 해 시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서 회장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굴비를 손질하는 사이 다른 회원들은 채소를 씻고 호박을 무치고 계란말이를 하는 등 역할을 나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이상 함께 봉사하다 보니 이제는 손발이 잘 맞는다.
분당성바오로본당 빈첸시오회는 매주 경기도 하남에 있는 장애인시설과 무의탁 노인요양원 2곳, 여성장애인 그룹홈, 청소년 관련 시설 등을 찾아 음식을 대접한다. 분기별로 나들이도 함께 가고 어버이날과 성탄 때에는 선물도 드린다. 필요한 가전제품을 지원하기도 한다. 특히 지역 내 어려운 18가정을 찾아 10만 원씩 후원하고 말벗이 되어 위로를 전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곽정선(데보라, 66) 회원은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어르신들을 위해 기도도 해드리고 말벗도 되어 드리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어려운 중에도 성실히 살려는 분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한 달에 두 번 시간을 낸다”고 말했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봉사에 필요한 예산만 수천만 원. 서 회장은 “본당의 적극적 후원과 명예ㆍ특별회원들의 정성과 바자 등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며 “20명의 활동 회원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봉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20여 년 봉사한 곳만 20여 곳, 빈첸시오회는 지난달 1000차 주회를 마치고 지난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봉사 통해 위안을 얻는 사람들
“데레사, 지난번보다 계란말이 하는 솜씨가 많이 좋아졌네.” 한 회원의 농담에 숨 가쁘게 돌아가는 주방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유지원(데레사, 50)씨는 “제가 여기서 음식을 제일 못해서 계란말이를 담당하고 있다”며 “봉사에 대한 목마름으로 2년 전 남편과 활동을 시작했고, 설거지도 못하던 남편이 이제 된장찌개도 끓인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를 통해 삶의 활력을 찾으며 봉사는 스스로를 위해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가난한 분들을 만나 그분들의 선한 마음에 힘을 얻고 주님 은총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빈첸시오회 맏형인 이신효(미카엘, 70)씨도 어르신들에게 대접할 감을 깎는 데 여념이 없다. 이씨는 “원래 봉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직장생활을 핑계로 미적거리다 빈첸시오회 활동을 시작했다”며 “어르신들을 위해 땀을 흘리면 마음도 편해지고 오히려 나 자신에게 봉사한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웃음 지었다. 한 달에 네 번 봉사에 참여하는 그는 이날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
식사 준비를 마친 한 회원은 “꼭 가야 하는 저녁 약속이 있어 가지만 내일 새벽 김장 봉사에 나오겠다”며 급히 주방을 나섰다. 약속이 있는데도 봉사에 나온 것이다.
“땡, 땡, 땡.” 오후 5시 20분.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 반찬이 어르신들을 기다린다. 회원들이 식당에 들어서는 어르신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준비한 음료수를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따라드리며 안부을 묻는 것도 잠시, 20여 분 만에 어르신들의 식사가 끝나고 봉사자들도 급하게 식사를 마쳤다. 설거지와 주방청소가 남았다.
봉사에 내공이 쌓인 회원들이 순식간에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 물청소에 들어갔다. 바지를 걷고 양말을 벗은 후 손에 청소용 솔을 쥐고 주방 구석구석을 박박 문지른다. 오후 6시 50분. 식사 준비부터 청소까지 쉴 틈 없이 돌아간 일정이 마무리됐다.
서 회장은 “내가 빠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많은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 같다”며 “마침 김장이 있어 봉사가 이틀간 이어지는데, 새벽 김장 봉사에도 5명가량이 참여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마음속 주님을 만나는 시간
다음 날 새벽 6시 반. 프란치스꼬의 집 김장을 위해 빈첸시오회원들이 다시 모였다. 어제 김장 봉사를 오겠다고 말한 한 명을 빼고는 새로운 얼굴들이다. 숨 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추위에 맞서 앞치마와 장화, 벙거지 모자로 중무장했다. 인근 본당에서 온 봉사자들도 새벽 일찍부터 봉사에 나섰다. 소금물에 절여 놓은 배추 400포기에 물을 빼고 버무려야 한다. 9시 미사가 끝나고 배춧속에 양념을 넣을 빈첸시오회원들과 교대하기 전까지 작업을 마쳐야 한다.
한 수도자는 “해마다 살기가 빠듯해지니까 작년보다 후원자들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그래도 지속적으로 나눔과 봉사에 나서는 분들이 계셔서 고맙다”고 감사를 전했다.
신일용(프란치스코, 63)씨는 “빈첸시오회는 가난한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주님과 이웃 안에 주님을 만난다”며 “봉사는 어쩌면 자선을 실천하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침 7시 30분. 동이 트고 창을 통해 붉은 태양 빛이 흘러들어온다. 햇빛 속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니 ‘누군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아직 세상이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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