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며칠 있으면 11월입니다.
11월은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성월인데요.
죽음이라고 하면 두렵거나 불편한 생각이 드는 분들 많으시죠.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아름다운 이별도 가능합니다.
임종 환자들의 호스피스 현장을 담은 책이 나왔는데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묵직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김혜영 기자가 책을 펴낸 손영순 수녀를 만나봤습니다.
[기자] 우리 국민의 80% 이상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병원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의료기기에 의지한 채,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 회피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손영순 수녀가 「죽음에게 물었더니 삶이라고 대답했다」는 제목의 책을 펴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손영순 수녀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사실은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요. 아프고 힘들고 경제적인 것, 가족들로부터 홀대 받고, 사회적인 관계가 단절이 되고, 정서적 심리적 외로움과 고통, 영적인 고통 등등의 과정을 더 오래 겪거든요.
임종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책에는 모현 호스피스를 거쳐간 환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손 수녀는 10여 년 전 간암 말기 환자가 노트에 적은 글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노트엔 "두려워마라. 종점은 축복이다.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축복의 문이다"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손영순 수녀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그래 가지고 제가 그 분 때문에 ‘아, 종점은 시점이다. 우리가 참 사고방식을 바꿔야 되는 구나’. 그래서 그 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서...
정부는 호스피스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집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가정형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손 수녀는 국민의 인식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손영순 수녀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물론 정책, 법안 중요해요. 제일 먼저 있어야 되는 것은 국민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거에요. 교육이죠. 왜냐하면 국민이 보편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제가 강의하면서 ‘호스피스 아십니까?’ ‘압니다’ ‘그런데 호스피스 왜 안 가셨습니까?’ ‘거기는 죽으러 가는 곳 아니냐.’
손 수녀는 사별가족 돌봄모임을 진행하고, 교육자도 양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임이 전국 곳곳에서 체계적으로 시행됐으면 하는 게, 손 수녀의 바람입니다.
<손영순 수녀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죽음은 죽는 자의 것만이 아니거든요. 살아남은 자가 가장 힘들게 견뎌내야 되는 아주 큰 사건이고. 또 사랑하는 가족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죽음의 모습이 어떠했는가가 살아남은 사람의 평생을 좌우해요.
사별가족들에게 섣부른 위로는 금물입니다.
위로를 한다며 건넨 말이 상처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손 수녀는 말 없이 손을 잡아주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손영순 수녀 /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예수님은 서른셋에 돌아가셨는데 네 남편은 그래도 50살까지 살았지 않겠니?, 성서에서 고아와 과부는 긍휼히 여기신다니까 너는 예수님이 더 사랑하실 거야. 심한 게 아니에요. 위로에요. 그 분들 위로한 거에요. 나쁜 의도 전혀 없었어요.
다가오는 위령성월.
손 수녀는 자신의 죽음을 묵상해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언젠가 마주할 죽음을 묵상하는 일은 삶의 귀함을 더 진하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만큼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cpbc 김혜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