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1939년부터 6년간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2천만명이 넘는 군인과 4천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도 학살과 성폭력,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5년 뒤인 1950년,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해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성모승천을 교리로 선포합니다.
성모 마리아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친 뒤 하늘로 올라갔다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믿음을 공식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성모승천의 구원사적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른 인류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은 각별합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올해 성모승천대축일 메시지에서 “한국 교회는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유 주교는 광복절이 성모승천대축일과 같은 점, 우리나라가 유엔으로부터 국가로 인정받은 날인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축일’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해박해로 인한 첫 순교일도 12월 8일 성모 마리아 축일입니다.
1791년 12월 8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외종사촌 권상연 아고보가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운 ‘진산사건’으로 순교했습니다.
게다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인 5월 31일은 국내에 들어온 첫 사제인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순교일이기도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입니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1838년 12월 교황청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 교회 수호성인으로 청했습니다.
신앙 선조들의 성모님 공경과 사랑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후 1898년 명동대성당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고, 1984년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우리 민족과 한국 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했습니다.
<손병선 아우구스티노 /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회장>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우리 제2대 조선대목구장이신 앵베르 주교님께서 모시게 돼서 한국 교회와는 더 각별한 관계이고, 특히 8.15 광복절하고 맞닿아 있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성모님의 특별한 은총, 하늘에 불러 올려진 성모승천, 성모님의 구원의 상징으로서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이 같이 녹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