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의 포도원’ 치유 피정 진행하는 로렌스 케틀 신부(카푸친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장)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로렌스 케틀(59) 신부. 카푸친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장인 그에겐 낙태의 아픔을 경험한 친구가 있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인 베르나데트 굴딩 여사다.
로렌스 신부는 굴딩 여사와의 인연으로 낙태 후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두게 됐다. 낙태로 인한 죄책감에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벌 받을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던 굴딩 여사는 신앙으로 낙태의 상처를 극복했다. 현재 아일랜드에서 ‘라헬의 포도원’이라는 피정 프로그램을 통해 낙태로 상처받은 여성들의 치유를 돕고 있다.
2001년 한국에 선교사로 온 로렌스 신부는 굴딩 여사의 도움으로 2011년 10월, 한국에서 첫 라헬의 포도원 피정을 시작했다. 강화도 외딴곳에 있는 한 수도원을 통째로 빌렸다.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2박 3일간 절망과 상처, 긴장으로 겹겹이 쌓인 낙태의 고통을 털어놨다. 하느님과 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시간이다.
“낙태한 여성은 자신이 생명을 없앴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합니다. 낙태 후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증이 찾아오지요. 남편, 새 자녀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낙태한 여성들은 고해성사를 하지만 심리ㆍ영적으로도 치유가 잘 안 된다. 이 고통에 대한 비난과 판단없이 편안하게 털어놓을 사람과 공간이 없다. 로렌스 신부는 “자책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용서할 수 있어야 본격적인 치유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낙태는 태어나지 않은 순수한 생명을 죽이는 분명한 죄입니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죄인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낙태보다 강요된 낙태가 많습니다. 사회적 이유, 가족의 강요 등 여러 환경으로 낙태를 강제로 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로렌스 신부는 “치유 과정을 겪으면 남편과 다른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은 아이와의 관계가 풀렸기에 살아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새롭게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사제로서 한국 여성의 낙태로 인한 고통에 귀 기울여온 그는 “한국 여성의 고통이 더 이해하기 어렵거나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이든, 아일랜드든 낙태로 인해 슬퍼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같은 여성이고 엄마이지요. 슬픔과 좌절, 상처도 같아서 여성의 분노와 상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슬픔에 대한 치유의 필요성도 국적에 따라 다르지 않지요.”
로렌스 신부는 “위기 상황에 임신한 어머니의 감정과 두려움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 더 많은 아기를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낙태에 대한 잘못된 진실, 낙태한 여성들이 고백하는 고통을 통해 낙태가 가져오는 결과를 알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또 “낙태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은 필수적인 열쇠 중 하나”라면서 “젊은이들에게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존엄하며,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0월 20회째를 맞는 라헬의 포도원 피정에 참가 신청한 여성들은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평신도 생명운동가 강인숙(프리스카)씨와 나효숙(클레멘시아)씨가 봉사자로 피정을 함께 돕는다.
라헬의 포도원(Rachel’s Vineyard)
1986년 미국의 심리치료사인 데레사 버크 박사가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치유를 위해 시작한 가톨릭 피정 프로그램이다.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호주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라헬의 포도원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구약성경의 여인 ‘라헬’(예레 31,15)에서 이름을 따왔다. 한국에서는 1년에 세 차례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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