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 성 요한의 집 설립 20주년 감사미사
‘그룹홈’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시기였던 20여 년 전 군포에 자리한 ‘성 요한의 집’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은인과 내빈을 모시고 6월 1일 용호 성당에서 ‘군포 성 요한의 집 설립 2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감사미사는 교구장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 주례로 허보록(필립보) 신부와 최덕기(바오로) 주교와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문희종 주교는 강론에서 “먼저 그룹홈을 떠나 사회로 나간 선배들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며, “큰마음을 갖고 서로 존중하고 위로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천주교 신자가 되어, 자신 있게 생활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허보록 신부는 교구 원로사목자 파현우(레몬드) 신부와 박정근(안드레아), 김병무(라파엘), 이옥경(젬마) 씨에게 봉사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감사패를 증정했다. 참석한 은인과 봉사자, 그룹홈 관계자들은 영상과 성당 로비에 전시된 사진을 보며, ‘성 요한의 집’ 20년 역사를 회상했다.
‘요한의 집’은 허보록 신부가 1999년에 설립한 청소년들을 위한 ‘그룹홈’이다. 1990년에 우리나라에 온 허보록 신부는 1993년에 경북 영주 하망동 성당에서 ‘다섯 어린이집’이라는 그룹홈을 처음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지난 1999년 설립한 ‘성 요한의 집’을 비롯해 ‘성 야고보의 집’과 2009년 과천에 설립한 ‘성 베드로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3곳 시설을 다녀간 학생은 500여 명으로, 이 시설은 정부 보조금과 용호·군포·산본 본당 신자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한편 허보록 신부는 2001년 군포시장상, 2005년 위대한 프랑스인상, 2005년 푸른청소년대상, 2018년 아산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20년 동안 성 요한의 집에서 봉사를 해 온 김병무(라파엘) 씨는 “정년퇴직을 한 후,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허보록 신부를 도와 아이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등교를 시키며 시작한 봉사가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아이들을 편견 없이 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 요한의 집’에서 자라고 자립했다는 김정호(37) 씨는 “자립한 후, 금전적인 부분을 포함해 생활 모든 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점이 매우 힘들었다.”면서, “서로 감싸주고 격려하며 살아온 그룹홈과 달리,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생활은 매우 힘들기 때문에, 동생들은 철저히 준비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그룹홈’ 출신 이기백 씨 역시, ‘그룹 홈 안에서는 모든 것을 보호받고 살다가, 밖에 나오니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허보록 신부와의 인터뷰-
파리외방전교회 선교 사제로 한국에 온 지 29년이 된 허보록 신부는 신학대학 졸업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로마에서의 사제 서품식에서 다짐한 것도 역시 “평생 마더 테레사처럼 버림받고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서원이었다.
그런 그의 간절한 서원과 다짐은 한국에 입국해 강화도의 한 공소에 몸담다가 안동교구 영주 하망동 본당 보좌 신부로 사목하면서 만난 어린아이들로 인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허보록 신부는 26년 전 경북 영주에 있는 무료 급식소에서 매일 줄지어 밥을 먹는 어린이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아이들이 안타까웠던 허 신부는 사제관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발판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정 해체, 빈곤’ 등으로 인해 부모로부터의 양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일정 기간 보호, 양육, 교육하여 다시 가정과 사회로 복귀하도록 돕자!라는 목적이 생겼고, 이로 인해 ‘성 요한의 집, 성 야고보의 집, 성 베드로의 집’을 설립하게 되었다.
허보록 신부는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처음에는 생활도 어렵고 아는 사람이 없어서 어려웠으나, 안동에서나 지금 시설에서나 하느님께서는 천사와 같은 사람을 보내주시고 사회복지 후원도 만들어 주셨다. 시설 인근 주민들과 신자들에게 정신적이나 물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 감사하며, 법적으로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군포시청에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섭리를 확신한다.’는 허보록 신부는 한국에 와서 가장 도움을 받은 성직자로 파현우(레몬드) 신부와 윤용배(라자로) 신부를 꼽았다. 허 신부는 ‘그룹홈’을 구할 때와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두 사제의 도움이 매우 컸다면서, 이 모두는 ‘하느님의 계획’이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허보록 신부는 “그룹홈을 통해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가족을 주려고 했다.”면서, 그는 “부모님을 대신해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가정교육과 양육, 학교와 학원 보내기, 하느님을 믿기, 마음의 상처 치유하기, 자립할 수 있도록 좋은 생활습관 배우기, 행복하게 살기,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하기’ 등 여느 가정과 똑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결손 가정 아이들은 상처가 깊기 때문에 그 상처를 아물게 하기가 정말 힘들었다.”는 허보록 신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자주 대화하고, 사랑을 보여주고, 잘못하면 야단도 치고 또 용서해 주면서 어른들을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파란 눈의 ‘아버지’가 사랑으로 길러낸 500여 명의 ‘아이들’이 지금 이 사회 곳곳에서 ‘굳건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임효례 다리아 ilakgo@naver.com
수원교구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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